로켓배송에 빠지다

택배 사랑인의 주문의 세계

by 앨리스 W


쿠팡을 처음 접한 것은 러닝 장갑 때문이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러닝을 할 때 장갑을 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장 저녁 운동부터 장갑을 끼면 좋겠지만 쇼핑을 하러 나가기는 싫으니 그냥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며칠 기다려야겠다 마음을 정하고 쇼핑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가격비교를 하다 보니 쿠팡 발견. 쿠팡은 광고를 얼마나 하는 건지, 검색하다 보면 참 많이 걸리고 팝업창도 많이 열리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름은 낯설지 않으나 거부감 있는 쿠팡.

난 성향상 호객행위 하는 집은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 부담스럽다. 요란한 것도 싫고.

그래서 쿠팡은 일단 탈락.


얼마 후, 텔레비전이 갑자기 고장 나 버렸다. 있으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지만 꼭 못 볼 상황이 되면 더더욱 꼭 봐야 할 것 같은 강박 아닌 강박과 미련이 강하게 작용한다. 텔레비전을 살려보려 급히 AS를 신청했지만 AS는 불가했다. 어쩌면 예측가능한 결과였다. 혼수로 장만한 TV였으니까. 참 오래도 썼지.


얼마나 텔레비전을 봤다고, 그런 것 없어도 잘만 산다고 큰소리치며 일단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집안에 무엇하나라도 고장 난 부분이 있으면 당장 고쳐버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가 나인지라 망가진 TV를 두고 보자니 미칠 것 같았다.

나의 인내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당장 검색을 시작했다. TV 관련 정보를 찾아 적당한 텔레비전을 고른 후, 가격 비교를 통해 가장 저렴하면서 빨리 배송을 해주는 곳을 찾아냈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장 빠른 배송"이다. 그런데 또 회원이 아닌 그 쿠팡이었다.


역시나 나의 이성은 새로운 사이트 가입을 반대했다. 나라는 인간, 새로운 시도하는 것을 싫어하고 귀찮아질 법한 일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사이트 가입은... 글쎄 언제 죽을진 모르지만 사이버상에서 나의 흔적을 되도록 만들지 말고 간단하게 살다 가자는 것이 나의 지론인지라 새로운 사이트 가입은 당연히 반대.

돈이 없지 쇼핑 사이트가 모자라서 못 샀냐, 지금까지?


그러나, 돌고 돌아 난 결국 다시 쿠팡으로 돌아갔다. "로켓배송"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정말 내일이면 해결된다는 거지?' 난 결심했고, 회원 가입을 했으며 단번에 와우회원으로 가입도 해버렸다.

TV는 바로 다음날 설치 되었다. 와... 진짜. 정말.

쿠팡의 로켓배송은 성격 급한 나에게 정말 꿈의 세계를 선물했다.





그렇게 시작된 로켓배송의 세계는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배송은 아침에도 오고 점심때도 오고 자기 전에도 오고 새벽에도 왔다. 심지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왔다.

로켓배송은 점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슬금슬금 장갑도 하나 사고, 물통도 하나 사고,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로켓배송은 거의 매일 우리 집을 다녀가곤 했다. 심지어 하루에 여러 번 다녀간 날도 있었다.

나는 어느새 필요해서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앱을 켜고 '뭐 살게 없나' 둘러보다 충동적으로 쇼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식료품 배송으로까지 시선을 돌렸다.(이전에 식품은 거의 쓱배송에서 주문하곤 했었다)

몇 가지 메뉴를 정하고, 앱에서 쇼핑을 시작해 꼼꼼히 식재료들을 골라 주문을 마쳤다.

자, 이제 쓱의 새벽 배송과 뭐가 다른지 보도록 하지.


다음날 새벽, 물건이 도착했다는 카톡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힘주어 확 열고 보니 엄청난 박스들과 프레시백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살펴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배송된 프레시백들이 한쪽에 쌓여 가기 시작했고, 그 박스들이 자리부족으로 점점 밀리며 대문 앞을 막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른 아침, 종이박스와 프레시백 폭탄을 맞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진정 몰랐다. 한 개씩 이렇게 갖다 줄 줄은. 프래시백을 뜯자 한두 개의 물품들이 나오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백에, 종이 상자에 이렇게 공간이 남는데 왜 왜 왜 한두 개만 들어있는 건데??

심지어 프레시백에서 단 하나의 루꼴라가 나왔을 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러니 프레시백이 산처럼 쌓이지.


돌이켜보니 지나다니면서 다른 집에 배송된 프레시백들을 수차례 보았었다. 그들은 쓱닷컴의 새벽배송이나 마켓컬리의 보냉백보다 한결 작고 아담해 보였었다. 보고 지나면서 생각한 적도 있다.

'저 집은 식구가 적나? 조금 주문했나 보네.'

아니었다. 그냥 프레시백의 사이즈는 그런 거였다. 한두 개씩 배송하는 데 클 필요가 없을 수밖에.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거였다. 다른 마트들과 쿠팡의 배송 체계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수많은 프래시백들과 종이상자들을 정리하면서,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던 나와, 미련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마트 카트에 담듯 주문한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아울러 재미에 빠져 습관적으로 필요도 없는 물건의 충동 구매를 일삼던 그동안의 나의 작태들을 후회했다. 사람이 못나도 분수가 있지 어린애도 아니고 이 나이에 쇼핑 중독이라니.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주문하지 않겠다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래, 요즘 나의 쇼핑생활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지.


우리 집 같은 경우, 아들 둘인 네 식구라 온라인 장보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더욱이 요즘은 방학 특수를 누리는 중이라 아무리 장을 봐도 돌아서면 먹을 게 없다.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먹으니 먹거리가 떨어지면 매우 난감한 지경에 처한다. 매번 식사 중에 다음 끼니의 메뉴를 묻곤 하는 아이들이라 부담도 더하다.

이럴때엔 대형 마트 주문이 적합하다. 냉동이나 냉장, 가공 식품 정도의 구분으로 배송을 한번에 해주니 정리할 것이 적고 쓰레기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종이봉투를 분리수거하는 정도의 수고만 더하면 된다.

그러나 가끔은 아이들이 주문하는 메뉴를 해주려다 보면 식재료를 급히 주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장을 봐와도 꼭 누락되는 것이 있다. 아니면 다른 재료는 다 있는데 꼭 한 두 개만 떨어진 경우도 있고.

쿠팡은 이럴 때 이용하면 편리하다.






로켓배송의 세계는 나의 조급증을 부채질하고, 내 인내심의 바닥을 기어이 알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어느샌가 나는 더더욱 빨리를 외치고 있었고 '참을성 같은 건 개나 줘버려' 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적어도 배송에 관한 한 절대적이었다.


배송 폭탄을 맞은 이후, 나의 작태에 브레이크가 걸렸지만 여전히 로켓 배송 사랑은 진행 중이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민망하지만 여전히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신중하게 쇼핑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나의 노화와 더불어 건망증도 진행 중이기에 급할 때 로켓 배송은 유용하기도 하고, 주문하고 몇 시간 후면 도착하는 상품을 배송을 받았을 때의 희열은 말로 하기 어렵다. 그러니 완전 포기가 안될 수 밖에.


난 성인군자가 되려거나 뭔가 특별히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고 즐겁게 살고 싶을 뿐. 그래서 적당히 타협했다. 과하지 않은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로켓 배송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용하며 살 생각이다. 단, 완급조절에 확실히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쿠팡에서 뭔가 받아먹은 거 절대 없음. 솔직한 나의 경험담을 쓴 글임을 다시 밝힙니다.

아울러 쓱 닷컴, 이마트, 홈플러스, 마켓컬리 등등 모두 골고루 애정하며 사용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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