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사우나 너무 좋아

더운 나라 여행 필요 없음 사우나 가면 됨

by 앨리스 W


왜 쓸데없이 밖에 나가서 씻어?


결혼 전에는 사우나나 목욕탕, 찜질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사람이 나였다.

옛날 집이라서 화장실에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것도 아니고 집에 온수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목욕용품을 챙겨서 집밖으로 씻으러 간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즘 아파트는 시간에 관계없이 냉 온수도 잘 나오고 날씨나 계절에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목욕에 불편이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목욕탕에 가는 게 좋은 선택이겠지만 태어나 지금까지 아파트에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목욕탕 문화 자체가 낯설다. 심하게 말하면, '무슨 시간낭비 돈낭비란 말인가.'가 나의 지론이었다.

더해서 여러 명이 우글거리며 모여 있는 것도 싫고(심지어 나체로!).

이 생각할 때만 해도 아가씨였다. 결혼 전. 아직은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은 나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생각들은 천지개벽을 했다.

더 이상 부끄러움이나 남의 시선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나름 튼튼한 무신경을 갖게 되었다.

부끄러움보다는 편리함과 효율성에 더 큰 비중을 싣는다. 그래야 애들 키우면서 숨도 쉬며 살지.

육아는 많은 것을 단순하고 간편하게 만들고 생각도 심플하게 바꿔줬다. 기특하게도.



목욕탕은 복합문화공간이다


목욕탕이나 사우나, 찜질방은 단순히 씻는 곳이 아니다. 간단히 정의하면 복합문화공간이랄까.

씻고, 쉬고, 아이와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심지어 동네의 소소한 정보들을 얻어가기도 한다.


날씨에 따라서 육아는 급변한다. 특히 가만히 있질 못하는 아들을 둔 엄마 아빠의 경우 휴일에 집에 있는 것은 천인공노할 짓이다. 아이가 어릴 적(키즈카페에 다닐 나이 정도) 안 친절한 날씨에 대항해서 찾아낸 것이 찜질방이 있는 대형 사우나였다. 휴일에 멀리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갈만한 곳을 검색하다 남편이 찾아낸 곳이었다.

아이들은 물을 좋아하는 것에서 착안, 놀기도 되고 씻기도 되고 먹기도 되는 심지어 잠도 잘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동네에 있는 대형 목욕탕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곳은 3층에 걸쳐서 층층이 다른 콘셉트로 되어 있는 충분히 놀고 쉬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옥상에 트램펄린 같은 놀이 기구도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도 장소도 있을 뿐만 아니라 미니 정원도 있어서 계절마다 예쁜 꽃과 농작물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막상 가보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모두의 마음에 쏙 들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곳 식당에서는 밥도 잘 먹었다. 워낙 큰 곳이라 다양한 메뉴가 있기도 했지만 계속 뛰어놀다 보니 허기가 져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몇 시간 동안 뒹굴거리고 놀다가 밥 먹고 옥상정원에 가서 뛰어놀다가 또 간식 먹고, 또 뒹굴거리고 놀다가 집에 갈 때쯤에 깨끗하게 씻고 마무리. 하루가 그렇게 정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면 배는 볼록하고 얼굴은 반들반들 윤이 나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역시 씻겨놓으면 가장 예쁘다. 또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칭얼거리지도 않고 또 낮잠을 두어 시간씩 잤다.

그야말로 엄마 입장에서는 목욕탕을 다녀온 날은 땡잡은 날이었다. 아들 둘을 씻기고 땀을 비 오듯 흘리던 아빠의 입장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우나는 몸이 안 좋을 때, 특히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으슬으슬 추울 때나 관절에 문제가 있어서 물리치료를 해야 할 때 방문하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뜨거운 사우나에서 몸을 지지면 정형외과 물리치료보다 한결 효과가 좋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몸이 부실할 때 더 자주 찾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나이와 사우나 가는 횟수가 비례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정말 좋았던 것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아들만 있는 것이 어찌나 좋은지.

입구에서 남자 셋과 헤어져 혼자 여탕으로 들어갈 때면 얼굴은 서운한 척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아마 이때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또, 집에 돌아갈 시각이 되어 남자들과 헤어져 여탕으로 들어가 두 시간의 호사를 누리곤 했었다. (남편이 두 아이를 씻기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이 탕 전탕 돌아다니며 반신욕을 하고, 사우나도 이방 저 방으로 옮겨가며 하고, 썬베드에서 쉬기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등등 정말 꿈같은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보내곤 했었다. 평소엔 아이들에 쫓겨 초스피드로 샤워를 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텃세도 있지만 정보도 있다


평일에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평일은 주말이나 휴일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사우나에는 일일권 말고도 달이나 1년을 기준으로 한 번에 이용권을 팔기도 했는데, 자주 오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뭉치로 사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그 뭉치로 구입한 사람들을 회원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여탕을 주름잡고 있는 일명 회원 언니들이었다. (꼭 나이가 많아야 언니가 아니다. 압도적 포스를 가진 자가 언니다)


그녀들의 탈의실 옷장은 정해져 있었고, 탕에 들어가는 위치도 그러했고, 사우나의 자리배치도 더더욱 그러했다. 주류가 그녀들 패거리인 가운데에 간헐적으로 다니는 아웃사이더(나 같은)들이 몇 명 오가는 것이 평일의 사우나 풍경이었다.

모두 가족 같이 친근한 분위기에 서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음료를 나눠마시고 정보를 공유하고 안부를 묻는 그들. 목욕탕은 작게 말해도 울려서 매우 잘 들리는데, 그 언니들은 딱히 목소리를 낮추거나 조심스러울 이유가 없는 듯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당연히 알고 싶지 않아도 귀가 있으면 누구든 그녀들의 일상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매일 사우나에 간다면 아마도 그녀들 집의 대소사부터 결국엔 그들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들의 목욕가방은 대단히 화려했다. 큰 바구니 안에는 각종 목욕 관련 용품들과 타월, 사우나용 방석, 음료수용 텀블러 한 두 개 정도는 필수로 들어있었다. 목욕용품 몇 개 들어있는 내 가방과는 현저하게 다른 그녀들의 가방.

목욕이 아니라 어디 여행 가는 듯한 짐가방 같았다. 그것들은 목욕탕 바가지에 대강 담아 놓은 나의 것과는 대단히 비교가 되는 모습으로 사우나 문을 기준으로 열 맞춰 서있었다.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하고 나를 훑었다. 타인에 대한 거부감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구석으로 가 앉았다. 어차피 자리는 구석 밖에 없다. 슬금슬금 사우나 안을 살펴보니 가장 좋은 자리부터 순서대로 학익진처럼 자리하고 있는 그녀들.

모두들 짜기라도 한 듯, 방석을 깔고 앉아있고, 옆에는 얼음이 가득들은 시원한 음료수 텀블러와 모래시계를 두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 동네 토박이였다. 그녀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그녀들의 사생활 말고도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맛집 정보라든지, 어느 병원에 무슨 진료를 잘하는지부터 어디 미용실 정보, 근처 학교들의 대소사나 행사 정보도 알 수 있고, 학원가의 학원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동네에 떠도는 온갖 소문들도 빠지지 않는 화제 중의하나였다.


그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땀을 흘리곤 했다. 혼자 왔지만 알찬 정보도 얻고 이야기 듣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면 완전 행운 아닌가.



목욕탕 사우나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도 몸이 찌뿌둥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사우나 생각이 간절해 지곤 한다.

여행을 가도 꼭 온천이나 목욕탕이 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다.

목욕과 사우나는 간간히 피로를 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 놓으면 불안한 요즘이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목욕탕이 아마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도 잘 버티나 했던 우리 동네의 그 사우나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그곳에 있는데 아이들도 커버렸고 사우나도 문을 닫았다.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그 큰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해보곤 한다.

그 후 검색을 해서 몇 군데 목욕탕을 찾아가 보긴 했는데 아직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내진 못했다.

아마도 우리 동네의 그 사우나만큼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추억이라는 것이 그만큼 이름값을 하니까.


열심히 새로운 목욕탕을 찾아봐야겠다.

이제는 나 혼자 다녀야겠지만 그래도 역시 목욕탕과 사우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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