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노동하면 자유가 온다
오늘은 마음먹고 비상식량들을 채워 놓기로 했다. 하루 날을 잡아 넉넉히 만들어 두면, 만들 때는 힘들지만 당분간은 큰 걱정 없이 빠르게 식사준비를 할 수 있어 상당한 자유 시간을 저장해 둘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일명 시간 세이브용 급식소 요리 되시겠다.
오늘의 주 종목은 튀김. 생선가스와 치킨가스, 돈가스를 만들기로 했다. 양이 많을 뿐, 튀김 요리들은 모두 만드는 방식이 비슷한지라 실상 크게 힘들지는 않은 메뉴다. 하지만 그 쓰임은 무궁무진하다.
생선가스는 본래의 생선가스와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여 내는 방식으로 주로 먹는다.
치킨가스는 쓰임이 조금 더 다양하다. 유린기, 치킨마요 덮밥, 치킨 샐러드, 치킨버거나 스낵랩을 만들곤 한다. 돈가스는 그냥 돈가스 치즈 돈가스 고구마 돈가스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덮밥부터 우동, 샌드위치까지 다양한 요리로 변형하기도 곁들여 먹기도 좋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모든 요리는 반드시 튀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와 간편함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튀겨서 냉동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그때그때 간단히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는 것만으로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튀김 요리를 할 때 튀김기름도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다. 너무 많은 기름을 쓰자니 아깝고 처리가 곤란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먹을 때마다 오일 스프레이를 뿌려 에어프라이어에 튀기는 건 아무래도 맛도 덜하고 귀찮기도 하다.
또한 기름은 후처리가 아주 귀찮다. 남은 기름을 처리하는 것도 매우 수고롭고(나의 경우엔 남은 기름에 양파를 넣어 다시 끓인 후 필터에 걸러서 요리에 재사용하는 편이다) 튀김 한번 하고 나면 싱크대는 물론이고 식탁과 부엌바닥까지 상당한 양의 기름이 튀므로 꽤 여러 번 닦아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튀김은 날을 잡아 한꺼번에 해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튀김유를 준비해서 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넣고 한 번에 모두 튀겨냈다가 차곡차곡 냉동실에 보관한다. 냉동실에 쟁여두고 라벨링까지 마쳤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르게 쌓인 보관용기들이 착착 정리되어 있고 같은 부분에 각 맞춰 라벨링을 하고나면, 간편식이 줄 서있는 모습이 나에게 대단한 힐링과 무한한 기쁨을 준다. 요즘은 기쁨도 기쁨이지만 기억의 한계가 존재하므로 라벨링은 필수다.
예전에는 매 끼니마다 새 요리를 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식구들 입이 짧기도 했고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은 맛이 없다며 안 먹는 통에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요즘엔 식구들마다 드나드는 시각이 달라서 식사시간도 제각각이라, 준비가 없다면 어쩌면 하루 종일을 부엌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매번 새 요리를 준비하다니, 지금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무슨 음식이든 할 때 한 그릇 더 만들어 냉동해 두었다가 꺼내 데워먹도록 하는(주로 덮밥 종류가 그렇다), 편하게 살자는 주의로 선회했다.
처음엔 요리 시간을 줄여보고자 모든 재료들을 바로 쓸 수 있는 상태로 손질해 두곤 했다. 누구든 밥을 찾으면 간단하게 지지고 볶고만 하면 되도록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꽤 시간을 단축하기도 했고 나름 간편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엌으로 가야 할 때마다 더욱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뭔가 더 있을 거라고.
그러다 밀키트들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찌개는 기본재료들은 거의 비슷하므로 기본 채소들을 모두 썰어서 담아두고 특색 있는 재료들(차돌박이, 꽃게 등)을 각각 추가한 후, 양념장까지 넣어 냉동해 두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두면, 냄비에 밀키트를 털어 넣고 육수만 넣어 끓이면 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새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세상엔 정말 똑똑하고 현명한 주부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요리 동영상 하나를 보면 알고리즘에 따라 죽죽 끌려 나오는 다양한 요리 동영상들을 통해 끊임없이 새 세상을 만났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밀키트와 덮밥, 간식류들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미리 저장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해 먹던 고루한 메뉴들 말고, 정말 예쁘고 영양 많고 맛있기까지한 수많은 메뉴들이 존재했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뭐 먹지?'나 '언제 다하지?' 같은 시름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튀김류들 말고도 식구들이 자주 찾고, 냉동 보관이 가능하며,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밑재료 같은 것들은 날 잡아 대량으로 만들어 냉동식으로 쟁여두곤 한다. 노동의 집약화가 거의 실현되어 간다고 보면 되겠다. 각종 볶음밥과 주먹밥 종류나 그릴에 굽기만 하면 되는 샌드위치들도 그렇다. 최소 일주일이 편안할 수 있고 그만큼 내 자유가 저장 가능하다.
결혼 후, 요리가 대단한 스트레스였을 때가 있었다. 난 삼시 세 끼를 정해진 시각마다 먹기보다는 그냥 배고플 때 간편한 것들을 대충 먹으며 살아왔기에 더 그랬다. 세끼를 제시간에 먹어야 하는 남편이 부담스러웠고 때마다 요리하는 것도, 배도 안고픈데 같이 먹어야 하는 것도 큰 곤욕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생존을 위해 요리를 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다 사 먹일 수도 없고 대충 간편식을 먹일 수도 없었으며 매끼 배달을 시킬 수도 없잖은가. 더군다나 같은 동네에 편찮으신 시부모님이 사셨기에 반찬을 해드려야 했다. 선택의 여지없이 요리는 '하기 싫어'에서 '잘 해내야만 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엔 어마어마하게 먹어치우는 세 남자가 있다. 하....
주방 연차가 쌓여 갈수록 요령도 늘어나고 더불어 잔머리도 늘어가는 게 느껴진다. 매우 흡족하다.
물론, 여전히 외식도 가끔 한다. 사 먹기도 하고 배달도 시켜 먹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두고.
다 잘할 필요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때그때 느낌 가는 대로 저장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계획했던 메뉴를 다른 메뉴로 변경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계획대로 딱딱 맞추어 사는 것보다는 내키는 대로 휙휙 바꿔가며 사는 게 내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