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실

좋은 사람 옆에서 힐링하기

by 앨리스 W

문득 집에 혼자 있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먼 곳에 나가기는 부담스러울 때, 동네 친구를 떠올린다.


여차하면 운동도 가능한 간편한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어느새 퍽 따뜻해진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이어폰을 낀다.

조금 걷다 동네 친구의 집 근처를 지날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만날 수 있으면 좋고, 못 만나더라도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으니 좋고, 안부를 나눴으니 더 좋다.


어른이 되고 밥벌이를 할 때부터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부터, 외출로 동네 마실을 즐기게 되었다.

답답할 때, 우울할 때, 갑자기 답답해서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 동네 마실을 나서곤 했다.


처음엔 혼자 멍하니 놀이터에 앉아 있곤 했었다.

주로 처지비관, 자괴감, 자기혐오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살살 달래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결혼을 안 해도 된다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거지'

'왜 아무도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한마디도 안 해준 거지'

......


혼자 눈물을 쏟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달래느라 애를 먹곤 했다.

그마저도 시간은 십분 이십 분 남짓.

집에서 엄마를 찾을 아이를 생각하면 어서 추스르고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이 크기도 했고, 접을 건 접었고, 포기할 건 포기했고, 정리할 건 정리했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생 여유지만 회피의 노련함이나 잔머리가 굵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득도의 경지에 점점 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ㅎㅎ


맨 정신으로 못살겠다고 술을 마셨던 적도 있었고

현실도피를 해보겠다고 미친 듯이 웹소설을 읽어 재꼈던 때도 있었다.

어떤 것도 답은 아니었다.

그냥 잠시 잠깐의 눈가림이었을 뿐.


그때 그 친구를 알게 되었다.

친구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도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가까이 살기에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

마음이 맞아 허물없이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

성실하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밝은 친구.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면 수많은 나의 고민들은 잊히기도 하고, 굉장히 하찮아지기도 한다.

또한 철없고 사치스러운 투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건강하고 성실한 생각을 가진 친구는 내가 긍정적이고 밝은 사고를 하도록 유도한다.

친구와 함께 있기만 해도 저절로 착해지고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듯한 내 모습에 쑥스러움과 함께 간질간질한 자극이 올라온다. 성인의 신성한 빛을 받아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기분이랄까.

그런 좋은 친구를 둔 것을 보면 난 인복이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동네 친구와 헤어진 후 이어폰 꼽고 도는 동네 한 바퀴.

상쾌하고 기운차게 달리면서 받은 기운을 갈무리한다.



keyword
이전 11화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걸작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