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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앤미 Feb 28. 2024

귀여운 공격성: 깨물고 싶은 또리

귀여운 것을 보면 '지구 뿌셔!!'라고 말하는 이유

  또리는 너무 귀엽다. 내 눈은 이미 객관성을 잃었지만 세상에 또리만큼 귀여운 강아지는 없다. 심지어 믹스견이어서 유니크하게 이쁘게 생겼으며 똘망똘망한 눈, 쫑긋한 귀, 커튼 같은 꼬리 등 모든 것이 귀여움 그 자체다. 사진이 실물을 못 담아내는 것이 아쉬울 뿐이며, 산책 나가서 또리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는 매우 뿌듯하다. 물론 나도 안다. 모든 견주들의 눈에는 자신의 강아지가 최고로 이쁠 것이라는 것을.

귀여운 또리

    너무 귀여운 나머지, 또리만 보면 깨물고 싶고, 꽉 안고 싶고, 꼬집고 싶고, 괴롭히고 싶다. 이 감정을 부모님께 말하면 또리 괴롭힐 생각 좀 그만하라고, 또리에게 너무하다고 나무라셨다.

  '왜 또리를 보면 괴롭히고 싶을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지내던 시간들이 흘러 흘러, 어느새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미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Angela가 사는 지역으로 놀러갔을 때의 사진

  미국 교환학생 갔을 때 문학 수업에서 Angela란 친구랑 대화가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다.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단골 이야기 주제인 또리에 대해 대화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영원히 내 기억 속에 저장된다. 아래 대화는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편의상 한국어로 적겠다.


  "내 강아지 또리 너무 귀엽지 않아??!!"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머, 정말 귀엽다. 무슨 종이야?"

  "믹스견이야. 진짜 너무 귀여워. 근데 나 늘 궁금한 게 있다? 이상하게 또리만 보면 너무 귀여워서 괴롭히고 싶어. 그러지? 우리 가족은 이해 못하던데..."

  "어? 어! 나 그거 알아. 어디서 본 적 있어. 원래 우리가 귀여운 아기들 보면 볼 꼬집고 싶고 그러잖아. 그게 대상이 너무 귀여우면 그걸 통제하기 위해 반대 감정을 끌어올리는 거래. 그거 아마 용어도 있을 거야!"

  "아 진짜? 고마워! 그런게 실제로 있었다니!"


  유레카. 난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미국 교환학생 6개월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부모님 친구와의 대화를 언급하면서 너무 귀여우면 괴롭히고 싶은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알려드렸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현상이냐며 웃으셨다. 이건 용어를 보여줘야지 믿을 판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너무 귀여워서 공격', '귀여워서 괴롭히고 싶은' 등등 여러 검색어로 구글링을 한 끝에 날 구원해 줄 단어를 발견했다.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


  관련 연구도 있었다. 오리아나 아라곤 박사의 실험에서 처음 발견된 현상으로, 109명의 사람들에게 뽁뽁이를 나눠주고 귀여운 동물 사진과 일반적인 동물 사진을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귀여운 동물을 볼 때 더 많은 뽁뽁이를 터뜨렸으며, 박사는 이를 "귀여운 것을 보면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으려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귀여운 고양이

  이후 캐서린 스타브로폴로스 교수 연구팀은 두뇌 활동 패턴을 조사해 위 가설을 검증하였다. 귀여운 아기와 동물 사진 128장을 54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차례대로 보여주며 참가자들의 두뇌 활동을 조사했다. 실험 결과, 74%의 실험 참가자들이 귀여운 공격성을 느꼈으며, 위 참가자들의 두뇌를 조사한 결과, 지나친 감정의 쏠림을 막고 균형을 찾는 뇌의 보상 반응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귀여운 공격성이라는 가설이 뇌의 활동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귀여운 공격성 두뇌 활동이 일어나지 않는 26%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후후

귀여운 아기

  '귀여운 공격성'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후 나는 또리를 괴롭히고 꼬집고 싶은 마음을 당당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마음일 뿐이다.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 부모님은 그 용어 때문에 내가 기세등등하다며 한숨을 쉬면서 웃으셨다.

  혹시 너무 귀여운 것을 보면 "무 귀여워! 지구 뿌셔!", "너무 귀여워서 다 부숴버리고 싶어!"라고  말하는가? 외국에서도 너무 귀여울 때 "You're so cute that I could eat you up"라는 다소 과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역시 귀여운 공격성은 국적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는 현상이다.

  귀여운 것을 보면 공격성이 올라오는 사람들은 '귀여운 공격성'을 검색해보자. 신기하고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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