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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ggy Poo Feb 07. 2024

마흔 즈음에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항상 준비해 왔다. 법이 바뀌어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한국나이는 없어지고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되었다. 다들 나이가 한두 살씩 줄어 좋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나간 세월은 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내가 올해 마흔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우리 딸들은 아직 아빠는 30대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아빠가 좋은가 보다.

  마흔은 인생의 본모습을 받아들이는 나이이다. 더 이상 인생이나 장래에 대해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겪어 볼 만큼 겪어 보았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어떨지 대충 느낌이 온다. 나 역시 10대 때는 의대 입학만을 꿈꾸며 환상을 가지고 살았다. 의대에 입학해서는 의사가 되는 때를, 의사면허를 따고서는 전문의가 되는 날을 꿈꾸며 기다리고 살았다. 어느덧 전문의가 되어 의사로서는 더 이상 이룰 목표가 없어졌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사랑하는 몇 사람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또 내가 제일 존경하던 어머니가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라 비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모든 삶과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이 뒤엉켜 흘러가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이 마흔이 되면 인생의 본모습을 비로소 체득하게 된다.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지금 죽는다고 해도 남 미련도 별로 없지만 안타까운 것은 하나 있다. 스무 살에 의대에 들어가 군의관,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된 지 5년째가 되니 이제야 환자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의사가 된 것 같다. 내 나이가 마흔이니 이제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날도 20년 정도 남았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 어렵게 수련을 받아 이제 좀 환자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이 2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인생의 의미는 명예나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슈바이처와 같은 명예는 죽은 자에게, 혹은 곧 죽을 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돈은 죽을 때까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다만 내 기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오늘 나에게 보내주신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 마흔 살 나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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