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

by Doggy Poo

중년에 접어드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은 그런 시간이 존재하는 줄은 모르고 살았다. 항상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살고 있었다. 짬이 나도 휴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휴식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는 줄은 몰랐었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생기니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했다. 어색해서 멍하니 있다가 찬송가를 몇 곡 불렀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공부도 다 했고 집안일도 다 했다. 운동도 다 했고 아이들 챙겨야 할 것까지 다 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다. 하고 싶은 취미도, 듣고 싶은 음악도,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찰나였지만 허무함의 심연에 빠진 것 같았다. 답답하고 괴로웠다. 어릴 적 방학 생활계획표에 '자유시간'을 적어 넣을 때 설레고 기대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나, 원하지 않는 자유시간은 도리어 괴롭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언저리. 조금 있으면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성경을 읽을 시간이다. 아직 아이들이 씻지 않은 것 같아 서둘러 씻으러 가라고 재촉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 정치인이 지역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20년 후에는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마치 자기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순간 '저 사람은 20년 뒤에 살아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저 사람에게 재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이루려고 하는 것들이 언젠가 모두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그것들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야 나는 남는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깨달은 것 같다. 그 시간들은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사랑의 흔적은 영원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많아질수록 더욱더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크고 대단한 사랑이 아니라 작고 진실한 사랑으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 그 인생은 결코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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