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ggy Poo Apr 18. 2023

형과 동생

  근처 대학병원에서 60대 남자 폐암 환자의 전원이 가능하냐고 문의 전화가 왔다. 폐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도 되어 있는 상태이고 암치료도 안 하고 연명치료도 안 하기로 한 상태라고 했다. 내가 일하는 작은 병원에도 이런 환자는 입원시킬 수가 있어 환자를 받기로 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새까맣고 깡마른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몹시 숨이 차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슴 엑스레이를 보니 큰 암뿐만 아니라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한 것 같았다. 숨이 찬 환자는 대부분 무척 힘들어하기 때문에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지도 몸부림을 치지도 않았다.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면서도 여러 가지 검사들을 차분히 받고 있었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60대에 암치료를 안 하기로 했다니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것을 포기한 것을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조금 뒤 보호자인 남동생이 도착했다. 남동생 적어도 50대는 되어 보였다. 간병할 사람이 있는지 묻자 본인이 간병을 하겠다고 했다. 요즘에는 가족들도 간병을 못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짜증을 내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힘들어하는 환자가 검사를 받고 환의를 갈아입을 수 있도록 '형 이거 할 수 있겠어?' 하며 옆에서 도와주었다. 환자도 차분했고 보호자도 다정한 모습이었다.

  검사를 해보니 할아버지는 심장도 안 좋은 상황이었다.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폴리 카테터라고 하는 소변줄을 끼우지 않는다. 넣을 때 환자가 아파할 수도 있고 감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이 안 좋으면 소변양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소변줄을 넣을 수밖에 없다.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어르신, 소변줄을 안 넣으려고 했는데 해야 되겠어요.' 하자 할아버지는 외마디 '네' 하며 수긍하였다.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런 환자들을 보면 이 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지 생각해 본다. 아마도 이 할아버지와 남동생은 우애가 좋을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쌓아온 추억이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남동생에게 사랑을 많이 주었을 것이다. 새까맣고 볼품없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지만 이 분은 평생을 훌륭하게 살아오셨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더 삶의 끈을 이어가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리 길지 못할 것 같다. 의료진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좀 더 편안하게, 고통을 조금 덜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런 환자의 마지막을 돌보아줄 수 있는 의료진의 소명이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자정이 넘어 응급실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상태가 조금 안정되어 동이 트기 전에 병실로 올라갔다. 그 옆에는 남동생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어린 형제 두 명이 시골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