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싸늘하게 두뺨을 스치면, 내년도 경영 계획을 세울 때가 된 것이다. 매년 이 시기에, 회사 전체 인력의 30%가 최소 2개월 이상 '계획하는 일'에 몰두한다. 계획을 세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계획은 뭐하러 세울까?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될 텐데......
'뷰카(VUCA)'의 시대다. 자동 보정, 뽀샤시 필터는 물론 화장, 성형 기능까지 갖춘 카메라 앱이라거나, 셀카를 잘못 쓴 거 아니냐, 심지어 셀카가 아니라 셀피(selfie)라고 해야지 촌스럽기는, 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넣어 두자.
'뷰카(VUCA)'란 변동성(Volatile)과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신조어로, 불확실한 미래를 뜻한다. 내일은커녕 당장 일 분 일 초 뒤에 일어날 일도 짐작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시대에 불확실한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큰 방향을 정하고, 고정적인 계획보다는 민첩한 실행과 유연한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으냔 말이다.
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이럴 시간에 그냥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한다면, 정말 서운하다. 그냥 하는 것 만큼 안 좋은 게 없다. 모티브 스펙트럼에서 말하는 6가지 동기 중 가장 하위에 있는 것이 '타성(inertia)'이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하는 것이다. 이는 무기력을 유발하고 조직 성과에 악영향을...... 관두자.
도대체,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불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지금까지 '당연하게' 해 온 일이기 때문은 아니겠지? 이렇게나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고작 그런 이유로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견 팀장, 교육팀 내년도 추진과제 '사내 컨설팅 프로세스 매뉴얼 완성'이랑 '피드 포워드 과정 개발 및 실태 조사 보고서 공유' 중에 하나를 가중치 20%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뭐... 좋습니다. 상관없어요."
"하긴, 전부 다 달성할 거니까, 그치? 껄껄껄~"
하기 싫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