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를 겪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방법
며칠 전 지인의 아이가 유박비료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먹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갓 1살을 넘은 뽀얗고 이뻤던 그 아이, 미용하는 곳이 마포여서 미용하는 날이면 덕팔이와 만나 함께 산책하였던 그 아이를 이젠 다시 볼 수 없다는 마음에 슬픔이 차올랐고, 지인분이 아이와 이별을 하며 담담히 써 내려간 글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덕팔이를 만나기 전 2017년 11월 3일, 약 7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견생을 나의 첫 강아지 헤일로를 보낸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초보 견주였던 나의 무지함으로 인해 아이는 속으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고, 이미 발견했을 때는 병원에서도 손쓰기를 멈칫하는 단계의 병으로 발전해 있었다. 아이는 결국 치료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겨 입원한 지 이틀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병원에서 CPR을 하는 과정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이후 4시간까지 아이를 붙잡고 펑펑 울며 의사 선생님께 온갖 질문이란 질문은 다 해봤던 것 같다. 무릎을 꿇고 빌며 제발 살려달라고,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다고. 아직 아이의 몸이 따듯한데 살아있는 거 같은데 왜 사망 선고를 내리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등등. 이후의 기억은 확실하진 않지만 차가 없었기 때문에 택시를 잡으러 나갔어야 했고, 축 늘어진 강아지의 몸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내려놨을 때는 아이의 몸에서 마지막 소변이 옷에 흘러나와 있었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빠와 함께 아이를 묻으러 시골에 있는 우리 집 사과밭으로 내려갔다. 화장하기보다는 가족의 손길과 발길이 닿는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묻어주고 싶었다.
아이를 보낸 이후 나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살면서 슬펐던 적이 분명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살면서 가장 많은 양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이 울어 나중에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고 10킬로가 좀 안 되는 그 작은 녀석이 돌아다녔던 우리 집구석 구석마다 녀석의 흔적이 가득해서 한동안 엄마·아빠 집에 가서 지내는 선택을 했었다.
슬픔을 승화시키는 과정은 시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 한 달간은 매일 아이를 묻어둔 곳에 가서 날이 좋으나 궂으나 매일 울었고, 꿈속에서도 아이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며 현실을 지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픈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힐링 카페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추모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올라온 다른 아이들 글을 보며 지금 이 고통을 겪는 견주는 나뿐만이 아니구나 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질감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에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까만 강아지를 볼 때마다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져 돌아다니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이르렀다. 몸무게는 46kg까지 떨어졌고 이렇게 살다가는 안될 것 같았다. 매일 유기견 입양센터에 입소되는 아이 정보들을 보며 조금이라도 비슷한 아이를 보면 무조건 저장을 하고 지켜보기를 수십 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덕팔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덕팔이의 정신없음에 영혼이 털려 나의 슬픔이 승화된 것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펫로스로 인한 마음의 병도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일로 상담을 받으러 갔었는데 아직 내 안에 슬픔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었다. 분명 나는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매번 돌아오는 11월에 조금은 더 다운되기는 했지만 이젠 아이의 이전 사진들을 외장하드에 정리할 만큼 조금은 감정이 무뎌졌고, 덕팔이로 인해 만들어진 인연들로 더 활발해졌는데 이런 모습들 가운데 아직도 펫로스로 인한 슬픔이 남아있다니 나도 믿기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저 말 이후에 상담사분은 더 처방책을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본인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모르겠다고까지 얘기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펫로스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없다. 심지어 반려동물이 죽으면 사체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라고 할 정도로 아직 동물에 대한 존중이 매우 미개한 편이다. 사설 장례식장과 화장터 그리고 반려동물과 작별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회사들이 하나둘 등장하지만 아직 떠난 이들의 추억을 안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명확한 시스템은 없는 상황.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본 사람들의 슬픔은 주위에서 쉽게 공감받거나 존중받지 못한다.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슬픔이 오래되면 돌아오는 건 비난조의 어투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본 사람들의 심정을 제일 잘 이해하는 건 같은 슬픔을 겪어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수의사들은 보호자가 펫로스를 겪으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룹에서 상담받는 것을 제안한다고 한다. 그룹을 주도하는 사람은 펫로스 심리상담 자격증이 있는 전문 심리상담사들이다. '아이가 떠났습니다' 하고 사망 선고 후 바로 병원비를 치른 후 병원에서 내보내는 우리나라 동물병원과는 차원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펫로스를 겪어본 사람 입장에서 우리나라에 이러한 모임이 없다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혹시 주변 지인이 펫로스를 겪는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을 조심 스래 추천해본다.
1.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대화하기
: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답이 나올만한 질문 끊임없이 해주기.
ex)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어떤 모습이 기억에 가장 남나요, 무엇을 가장 좋아했나요 등등
2. 반려견의 사소한 안부 챙기기
: 펫로스를 겪은 이라 하더라도 최소 한 달간은 그들이 반려견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펫로스를 겪은 이들의 강아지를 가까이서 봐왔다면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특정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나름 이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ex) 날이 너무 좋다. ㅇㅇ 이도 지금 하늘에서 신나게 산책하고 있겠지?
3. 그들의 추억을 존중해줄 것
: 펫로스를 겪은 이들은 한동안 본인 강아지에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가령,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애는 쟤보다 더 이뻤어'라는 말을 한다든가 하는. 이런 말들을 하면 전적인 공감을 해주자. 아픈 과정이 지나갈 때까지는 이들의 추억이 미화되는 과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끄덕여주는 것만큼 큰 위안도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펫로스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됬길 바란다.
수고했어요, 고생 많았어요, 당신의 아픔을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