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항해를 끝내고 귀국하여 아내와 함께 콕콕이의 존재를 산부인과 초음파 영상으로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물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눈물을 흘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에 대해 인간적인 궁금함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생명 탄생의 신비, 소중함이야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와서 머리로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명이 아내의 뱃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어려운 생명 탄생의 신비한 과정이나 어떻게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단순한 신기함에 놀라는 것이 아니다. 생명에 대해서 갖고 있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설명할 방도가 없다. 우리 세상의 모든 표현을 능수능란하게 다를 수 있다고 하여도 그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명문가가 완벽하게 표현한 글도, 명연설자의 화려한 말재주를 이용한 표현도, 석학의 객관적인 설명도 어떤 미사여구를 갖고 와도 그 찰나에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이 지극히 순수하기 때문에 표현자체가 불가능하다. 간접적인 체험? 불가능하다. 감히 순수한 그것을 어떻게 간접적으로 체험시킨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 오히려 먼저 알게 된 아내가 부러우면서도 샘나기도 했던 것.
이렇게 표현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서 가능하다면 가장 좋아하는 박경리 선생님의 문체를 빌려 잘못된 글을 써서 표현하여도 존재 자체에 의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아름답게만 느껴질 듯한 어떤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무한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는 이 공간조차 유한하게 만드는. 사람을 참 사람으로 이끄는 존재.
내가 처음으로 만난 우리 콕콕이에 대해 느낀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