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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희 Jun 10. 2024

등을 보이지 말 것

#대련


운동을 시작하고 첫 금요일이 되었다. 평일 주 5일 근무하는 노동자와 학생에게만 금요일이 의미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도장은 주말에 쉬기 때문에, 이 생활체육인에게도 금요일은 의미가 있었다. 내일이면 운동은 쉰다니, 마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더욱이 금요일은 대련을 ‘관람’하는 날이었다. 상식적으로,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나에게 대련같이 무시무시한 걸 시킬 리 만무했다.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으로 몸 좀 풀고 나면 청소년 선배들의 혈기 왕성한 스파링을 볼 수 있겠구나. 진짜 재밌겠다.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몸 풀기 운동 후 우리는 사범님의 지시에 따라 일대일로 짝을 지었다. 그 짝과 공격과 수비를 하며 대결을 펼쳐야 했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는 수석사범님이었다.


사범님하고 저하고 대련을요?


묻고 싶었지만 조용히 서로를 주시할 뿐이었다. 사범님께서 나에게 공격이라고 명하셨고, 전날 맹연습한 기본자세 가운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최선을 다해 서 있는 자신을 쓰러뜨려보라고 하셨다. 우선 자신의 도복 깃을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사범님은 정말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셨다. 타인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다. 어떻게 사

람이 사람을 신체적으로 공격해 무력화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나는 무술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오로지 방어만을 생각했지 공격은 꿈에도 그려본 적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로 맞는 쪽이었지 시원한 펀치 한번 날려본 적도, 누군가의 머리끄덩이를 야무지게 잡아본 적도 없다.


그래서였는지 어떻게 사범님을 공격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범님의 손을 피하기만 했다. 그때 하늘에서 계시가 내려오듯 사범님의 가르침이 내 귀에 쏙 박혀 들어왔다.


“제희 님, 피하지만 말고 직면하세요.

문제를 파악해야 해결하는 겁니다.”


나는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너무나 내 취향에 들어맞는 지침이었다. 발음은 또 어쩜 그렇게 또박또박 정확하신지.


“와, 선생님, 아니 사범님, 명언이시네요. ”


사범님은 매와 같이 날카로운 눈매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셨지만 나는 명언에 꽂혀 있었다. ‘절대 잊지말아야지. 문제를 직면하고 파악해야 해결하는 거야’를 속으로 되뇌고 말이다.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사범님이 쓰러져 있었다. 이럴 수가, 지금 내가 사범님 쓰러뜨린 거?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사범님이 눕거니 내가 눕거니 하면서 우리는, 아니 나는 수비와 공격을 필사적으로 했다. 발로 밀어내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사범님의 도복 자락이라도 잡아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사범님은 다리로 상대의 허리를 감싸 돌려서 제압하는 법도 알려주시고, 누워 있는 상대 머리 위로 가는 법도 알려주시고, 계속 뭔가 알려주셨지만 전부 귓등만 한 대씩 치고 나갔을 뿐 나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런 나를 마지막까지 그냥 두지 않으시고 사범님은 회심의 공격을 넣으셨다. 내 등 뒤에서 나를 두 팔로 옥죄어 옴짝달싹 못 하게 압박하기.


“제희 님, 빠져나가보세요.”

“제, 제가요?”


진짜 너무하시네요. 이제 일주일도 안 된 수련생에게 이런 고난도 방어술을 알아서 펼쳐보라고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아서 아등바등했지만 자비를 베푸셨는지 사범님의 배를 팔꿈치로 한 대 가격하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때 사범님께서 또 명언의 일격을 가하셨다.


“잘하셨어요, 제희 님. 그런데 왜 등을 보이시는 거죠?”


아니 그게 왜요?

“절대 등을 보이면 안 됩니다. 뒷걸음질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사범님이 주상 전하도 아니신데요?




“상대를 끝까지 주시하세요.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릅니다.

단 한순간도 문제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면 안 됩니다”.



나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한순간도 문제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지 말래.

상대를 끝까지 주시하래. 


너무 멋있잖아.

정말 가훈으로 삼아도 좋을 가르침이야!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어느 정신건강 전문의가 텔레비전에 나와 하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회피’가 모든 상황에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게 당장은 자기를 지키는 방법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회피’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내게 그 말은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회피란 아주 비겁한 녀석이니까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괴로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 가.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라고? 그래, 지나치게 힘들 땐 내 일이 아닌 듯 거리를 두어도 좋은 거였구나.


단, 역시 그것도 ‘잠시’만이라는 게 더 중요하지 싶다. 그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직면은 불가피하다.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징조는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왜 계속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는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인생이 어떤 공격을 가해오든 정면으로 지켜보아야 그것을 넘어설 수가 있다.


이게 말이 쉽지, 참 고난도 배짱 아닌가.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감거나 시선을 돌리거나 눈의 초점을 흐리면 안 된다니 그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문제 상황을 직면한다는 건 결국 그에 대응하는 못난 자기 모습도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모든 탓을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만 돌리고, 하다못해 조상에게라도 돌리고 적당히 피해보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외부로 탓을 돌리는 것도 대체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

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을 직면하지 않고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인생의 다리걸기, 발차기, 암바, 업어치기, 백초크…… 같은 다양하고 역동적인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오랫동안 회피했던 문제들은 당장은 별일 아닌 듯 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도 종국엔 빵 터져서 귀가 먹먹해지고 마음도 먹먹해지고 인생도 먹먹해지는 사달이 나곤 했다.


삶이 주상 전하는 아니지만,

때로 잔인하게 굴고 못된 구석이 있는 무뢰한이기도 하므로

등을 보일 수밖에 없더라도 되도록 짧게,

아주 잠시만 그렇게 해보기로 하는 거다.


수많은 수강생에게 전해졌을 그 말이 나를 얼마나 놀랬는지도 모르고 사범님은 나에게 두 번째 스파링 상대를 지정해주셨다.


바로 중2 남학생!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물어보니 몸무게도 20킬로그램이나 더 나가는, 인생에서 가장 못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 2가 내 앞에 섰다. 나는 가르침 그대로 상대를 직시하며 선포했다.


“봐주지 않을 거예요.”


이 몸은 이미 사범님의 명언에 두 번이나 노출된 몸이시다. 상대는 헛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대련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녀석의 도복 깃조차 잡지 못했다. 훗날 알고 보니 이 청소년은 체육관의 에이스 중 하나였다.


잔혹한 사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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