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제희 Jun 17. 2024

일탈을 도모할 것

#연속안다리 차기 (1)

도장 출입을 거듭할수록 운동이 일상의 일부가 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잘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동작별로 정말 조금씩 진도를 나갔으나 기본자세는 물론 발차기, 호신술, 낙법, 기본형 등 몸에 쉬이 익는 자세란 없다시피 했다. 이렇게 못하는데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이 운동을 왜 안 배우고 살아왔지 싶을 정도였고, 역시 스포츠라면 이 정도의 역동성은 있어야지 싶었다. 어느 날엔 출석 인원이 나 하나뿐인데도 그전

처럼 도망가지 말라는 사범님의 지시를 따르기도 했다. 땀 흘리고, 집으로 걸어가며 식히고, 도착해 샤워한 뒤 소파에 앉으면 행복감이 찾아와 내 옆에 붙어 앉곤 했다. 


사범님들과 나 혼자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도 안 돼! 


이런 저항감이 운동 후의 상쾌함과 행복감에 지고 만 것이다.

와, 나 이제 김종국이 이해돼.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하면 온갖 좋은 호르몬이 분비돼 심신이 건강해진다더니, 사실이었구나.


아쉬움이 있다면 9시 성인부에 나가면서 청소년 친구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조금 일찍 가서 인사를 하기로 했다. 도착하니 앞 수업이 끝나고 있었고, 은수 지수 자매는 서로의 파트너로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면서 중간중간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양손을 들어 호들갑스럽게 인사했다. 아이들은 눈빛과 미세한 고갯짓으로 내 유난한 인사에 반응했다. 한 세트의 대련이 끝나자 파트너를 바꾸어 은수가 수석사범님과의 대련에 들어갔다. 파트너를 잃은 동생 지수가 내 옆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머리 왜 안 땋았어요?”


응? 그동안 내 머리 스타일까지 보고 있었어?


“이렇게 묶으니까 너무 이쁘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는 지수.


“오늘따라 내 뒤통수가 좀 괜찮아 보여서 높이 올려 묶었어요.”


그러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지수는 나와 좀 더 거리를 벌려 앉았다. 나는 이 차가운 도시 초딩 녀석이 아주 다른 데로 가버리기 전에 화제를 돌렸다.


“내일 쉬는 날이라 학교 안 가서 좋겠네요.”


그러자, 지수는 다시 내적 거리감이 줄어든 얼굴로 자신이 내일부터 무엇을 할 예정인지 소상히 설명해주었다. 목요일 금요일 학교를 쉬고 포항에 사는 외할머니 댁에 고속버스를 타고 갈 계획이라는 것. 지수의 걱정은 멀미였다. 포항은 서울에서 너무 머니까. 멀미라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나도 지난 주말에 제주도에 갔잖아요. 택시를 많이 타야 했는데 멀미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지수가 이마에 주름을 그리며 물었다.


“토했어요?”

“아니. 거의 기사님 뒤통수에 뿜을 뻔은 했죠. 멀미약 꼭 챙겨요.”


손으로 뿜어내는 흉내를 내자 웃기지만 안 웃긴 척하는 지수의 냉소적인 표정을 보며 나는 이 대화가 오늘 수련의 예고와도 같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흡족해졌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 무릇 특공무술인이라면 선배를 즐겁게 해드리는 법.


드디어 8시부 수업이 끝났다. 지수가 수석사범님에게 이틀간 출석을 하지 못할 거라고 보고했다.

수석사범님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왜?”

“사범님은 몰라도 돼요.”


나는 더욱 흡족해졌다. 사범님, 사제 간의 우정은 제자 간의 우정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입니다.


잠시 후 성인부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수업의 체력 단련을 전담하시는 차석사범님과의 시간이 끝나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차기 수업이 이어졌다. 오늘은 기필코 연속안다리차기에 성공해보겠어. 언제까지 ‘못해도 재미있다니 역시 운동은 즐거워’에 만족할 거냐. 순수한 즐거움이란 것도 결국 성장이 뒷받침돼야 지속력이 생기는 법 아닌가.


기본 발차기는 앞차기, 안다리차기, 찍어차기(돌려차기)이고, 더 나아가면 연속안다리차기, 회축, 턴차기, 2단앞차기 등으로 이어진다. 이 중 내가 잘하는 발차기는 여전히 하나도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발차기는 역시 연속안다리차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멋있으니까!


기회만 있으면 나는 체육관 학생들에게 연속안다리차기를 보여달라고 졸랐는데, 봐도 봐도 잘할 수가 없었다. 대체 그 물 흐르듯 한 바퀴 핑 도는 즉시 뛰어올라 빡 걷어차는 기술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사범님이 들고 있는 그 미트를 퍽 소리 내며 연속으로 찰 수 있단 말인가! 지난 수업 시간에 분명 수석사범님께 슬로모션으로 배우긴 했지만, 일상과 업무에 이리저리 치이는 사이 시나브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수석사범님은 친절하셨다. 마치 연속안다리차기를 태어나 처음 접해본 수련생을 대하듯, 동작을 구간별로 끊어서 연결하는 법을 설명해주셨다. 이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리듬감으로 동선을 그리며 발을 걷어차 올릴 수 있다고 하셨다.


첫째, 공격 자세에서 오른발 안다리차기로 미트를 한 번 빡 찬다.

둘째, 그 발을 왼발 앞쪽에 내린 뒤 그대로 콩 콩 콩 세 번 만에 회전한다.

셋째, 원점으로 오면 왼다리를 90도로 들어 올리며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오른다리로 찍어차기를 한다.


그림 ⓒ 윤예지 작가님


나는 가르쳐주신 대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등과 배에서 땀이 흘렀고, 마스크 안에서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멀미가 나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기우뚱댈 따름이었다.

수석사범님이 다가와 물으셨다.


“제희 님, 본인이 왜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 다시 질문의 시작인가.

이게 무엇을 하기 위한 동작 같아요?

왜 이렇게 손을 꺾는다고 생각하세요?

기본 동작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활용될까요?

질문이란 참 좋은 교수법이란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구토감이 일 정도로 계속 빙빙 돌며 연습했기에 좀 어지러웠다.


“돌 때 눈을 감아서?”

“음, 또?”

“점프를 잘 못해서?”

“음, 또?”

“아마도 제가 급해서?”

“그렇취이!”


이 체육관에 다닌 뒤로 이런 칭찬은 거의 처음 들었다. 보통 너무 잘하는 수련생들에게 감탄하듯 뱉으시는 추임새인데, 나는 내가 왜 못하는지 알아서 칭찬을 받았다. 사범님 설명에 의하면 나는 첫 동작 후 회전할 때 너무도 급한 나머지 왼다리를 미리 들어 올리며 돌기 때문에 계속 기우뚱거리게 된다고 했다. 콩, 콩, 콩 세 번 찍으며 돈 다음에 왼다리를 들어 올리고, 그 반동으로 오른다리로 쩍어차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익숙해지면, 그때 그 모든 과정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라질 거라는 게 사범님 설명이었다.


눈을 감는 것도 문제 중 하나였다. 내가 상대를 계속 주시한 다고 생각하면 자동으로 회전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목표점, 즉 상대의 가슴팍이나 배를 연속으로 타격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서 시선이 벗어나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사범님의 설명이었다.


내가 성격이 참 급하기는 했다. 집안사람들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여서 누가 충청도인 느긋하다고 하면 콧방귀를 뀌며 살아왔는데. 중요한 건 속도 이전에 타깃을 주시하는 것과, 그 타깃으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안다리차기를 한 번 한 뒤 그 발을 내려놓는 위치, 회전 시 양다리의 높이, 회전할 때의 팔 동작 등이 돌아가는 속도와 몸의 균형감을 좌우했는데, 나는 회전 자체에만 급급해서 눈을 질끈 감은 채 잘못된 자세로 열심히 돌기만 했던 것이다.


수석사범님의 가르침대로 나는 천천히 정확하게 과정을 밟아가며 연습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칭찬을 한꺼번에 들었다. 찰 때마다 들려오는 사범님의 찌르는 듯 우렁찬 추임새.


그렇취이!

아주 좋아요!

제희 님 굿!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희 님, 하체 힘이 예상외로 좋아요. 균형감이 있어! 곧 몰라보게 좋아질 거예요.”


정말? 나는 마스크 안쪽에서 수줍게 웃고 말았다.


대체 발차기는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멋있으니까 그럴 테지.

왜 멋있게 느껴질까?


인간은 직립하도록 두 다리의 근육이 발달한 동물이다. 자연히 팔근육보다는 다리근육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위력적인 공격술인 발차기를 하기에 좋도록 진화했다는 뜻이다. 발차기는 기본으로 발산하는 힘에서 두세 배 이상의 파괴력을 만들어 낸다고 하니, 이 힘찬 기술에 내가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더 큰 매력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물 흐르는 듯한 동작의 연결과 허공으로 가볍게 뛰어오르며 발을 걷어차 올리는 그 빠른 리듬감. 이 움직임은 바로 중력을 거슬러야 생기는 것이었다.


양발을 땅에 단단히 붙일 때 인간은 안정감 있는 직립을 할 수 있다. 특공무술의 기본자세를 취할 때에도 다리와 발에 단단히 힘을 주고 바닥을 딛는 게 시작이다. 중력에 제대로 호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발차기와 같이 허공으로 뛰어올라야 하는 동작을 취할 때는 잠시 예외다. 중력에서 일탈해 뛰어오르고 허공으로 다리를 걷어차 올린다. 비록 찰나이지만, 그 일탈을 도모하고 잠시 날아오르(려고 노력하)는 동작에서 아마도 나는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생소하고 역동적인 느낌에 몸이 놀라고 즐거워하는 듯하다고 해야 할까. 살면서 거의 느껴본 적이 없는 신체 감각에 신이 나서 멀미가 날 만큼 돌고 돌며 연습한 것이다. 일탈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나. 그렇다면 그 동안 뭐 하고 살았을까?


그냥 두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며 지내왔다. 가령, 그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추지도 않았고,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하다못해 어느 날 전 재산을 닥닥 긁어모아 세계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다.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최대 일탈은 고등학교 시절의 아기자기한 모험들로 소급된다. 복장 불량, 지각, 무단결석, 야간자율학습에서 도망치기, 수업 시간에 만화책 보기, 학교장의

눈엣가시인 연극부 활동 정도가 다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모험이었는데, 흥미롭게도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던 순간보다 그렇게 일탈한 순간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져 화두에 오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책상과 소파와 침대에 붙어사는 내가 푹 떨어지고 차고 꺾고 밀어내고 조르는 기술이 난무하는 도장에 다니며 몸을 격하게 움직여보는 것도 꽤나 내 인생의 중력에 반하는 선택이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무관심한 내가 그들을 만나길 기대하는 것도 일종의 일탈이었다. 그러니까 연속안다리차기는 내게 이런 작은 일탈의 상징과도 같았다. 모처럼 꾀한 이 작은 일탈이 즐거움뿐 아니라 내 삶의 자세에 작은 변

화라도 낳는다면, 그것이 다른 변화를 꾀하는 또 하나의 기점이 되어준다면, 나는 영원히라도 회전하며 이 발차기에 진심을 바칠 수 있을 듯하다.




이전 04화 바닥을 쳐도 다시 올라올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