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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희 Jun 20. 2024

부끄러움을 자초할 것

#승단시험

체육관 도복을 입고 가장 마지막으로 매만지는 곳은 허리띠다. 아무리 뛰고 굴러도 풀리지 않는 방법으로 잘 둘러서 묶으면 복장 준비는 마무리. 훈련받는 중에도 수시로 뒤돌아 도복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그때도 그 허리띠를 중심으로 위아래를 잘 매만지곤 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다현 님과 내 허리에는 순수함의 상징, 하얀 띠가 둘려 있다. 하수 중의 하수란 뜻이다.


모처럼 주 4회 운동을 마친 주간, 몸살이 날 것 같은 조짐을 느끼며 금요일은 쉬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사범님께서 승급 심사가 있으니 금요일에 빠지지 말라고 하셨다. 말하자면, 입문하면서 매던 그 흰 띠를 떠나 이제 노란 띠를 따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출석한 성인부 전원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슬슬 눈치를 보았다. 누구라도 나오실 건가요? 역시 모두 사범님들 의 시선을 피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시선을 피해야 했으나, 고민했다. 노란 띠를 따봐? 


신기한 일이었다.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냥 적당히 체력 단련이나 하고 몇 가지 호신술 정도나 배울 줄 알았지, 이렇게 시험씩이나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흰 띠에서 노란 띠 딴다고 누가 ‘너 참 장하구나’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 나가서 자랑할 데도 없고, 장학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실질적인 이득은 전혀 없다. 자기만족이 있을 뿐. 어머, 나 중년에 이르러 운동 시작했는데, 신체 능력은 청년 못지않아서 자꾸 승급하네, 이런 만족? 아니다.


그냥 운동이 재미있고 되도록 오랫동안 하고 싶으니까, 그러자면 중간중간 어떤 결과를 내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그걸 내가 해내면 만족감이 크겠네, 그것이다.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건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과 시험의 조합도 자처해 하는 것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생각보다 잘해서 나 자신과 사범님들을 놀랠지. 당당히 노란 띠를 따서 강직한 매듭으로 허리에 동여매고 소셜 미디어에 기념사진도 남기리라.


다행히도 그날 출석한 사람은 나 외에도 다현 님이 있었고, 우리는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와서 그간 배웠던 것들을 복습했다. 기본형부터 호신술, 낙법까지 죽 훑었지만 징조는 아주 좋지 않았다. 머릿속이 자꾸 내 띠 색깔처럼 하얘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우리 두 사람은 두 사범님 앞에 서서 주문하시는 동작을 해내야 했는데, 머릿속은 이제 하얘지다 못해 투명해지고, 뭐 대수롭게 움직이지도 않는데 등과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콸콸 쏟아지고, 별수 없이 나는 지금 왜 이 부끄러움을 자초하고 있는가 자괴감이 들고, 사범님들은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자꾸 하늘을 보면서 한숨을 쉬셨다.


별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차석사범님이 보일 듯 말 듯하게 우리가 커닝을 할 수 있도록 조그만 손짓발짓을 해주셨다. 수석사범님도 이들이 이대로 낙오하면 영영 그만두리라 생각했는지 기초의 기초적인 것만을 문제로 내시고 그걸로도 부족해 구두로 자꾸 힌트를 주셨다. 이건 정말 엄청난 거였다. 그간 봐온 사범님들은 학생들에겐 국물도 없으시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찜찜한 과정을 거쳐 노란 띠를 허리에 매게 되었다. 기쁨은커녕 참혹함을 느끼던 귀갓길에서 두 사람은 다시는 승급 시험 따위 보지 말자고 마치 빨간머리 앤과 다이애나라도 된 것처럼 진지한 우정의 서약을 맺었다.


체력 단련만 해도 좋잖아요?

꼭 형, 호신술, 낙법 이런 거 다 잘할 필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취미로 운동하는 거잖아요?


이런 대화가 길어질수록 두 사람 다 기왕 보는 시험 어느 정도는 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만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건 아마도 운동하는 이의 발전 정도가 띠 색깔로 분명하게 구분돼 있어서 그런 듯했다. 우리가 속한 협회의 특공무술은 흰 띠 다음엔 노란 띠, 노란 띠 다음엔 주황 띠, 주황 띠 다음엔 초록 띠…… 그러다가 빨간 띠와 검정 띠 이런 식으로 무려 9단계로 걸쳐 승급하도록 설계돼 있다. 마치 초등학교 다음엔 중학교, 중학교 다음엔 고등학교에 진학하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학제 역시 이 승급 과정과 성격이 아주 유사하지 않은가. 고등학교까지는 어지간하면 입학과 졸업을 할 수 있듯이 검정 띠 전인 빨간 띠까지도 그렇다. 여기까지는 온실 속 화초처럼 우리 도장의 사범님들이 심사를 보기에 유연하게 심사를 진행해주신다면 약간 부족한 사람도 승급할 수 있지만, 검정 띠 1단부터는 아니다. 마치 그 학교의 기준을 총족해야 하는 대입 시험을 치르듯 울타리 밖 협회의 타 사범님들께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라면 다행이게. 검정 띠를 딴 다음에 2단 3단, 9단까지가 기다린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생활과 결혼 따위가 기다리고 있듯이 말이다.


학위를 가지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거나 창업을 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또 재산을 불려 자녀에게 넉넉한 유산을 넘겨주는 것. 이 인생의 흐름 역시 우리 사회가 설계한 승단 절차라고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어떤 뛰어난 이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이후 대학 교육 없이도 검정 띠 5단 6단, 9단에 버금가는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대다수 평범한 이는 단계별로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사람 사는 모양이 다양한 듯해도 큰 틀에서 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기에 그렇게들 아웅다웅 사는 듯하다.


다만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조금씩은 다르다. 나만 해도 그렇다.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밟아 사회인이 되었지만 안정적인 기업에 취직하거나 사내 승진을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획기적인 발상으로 기업가가 돼 경제적 부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만그만한 회사에 취직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았다. 안락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아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을 물려주기 위해 애쓰는 것, 그것 역시 내 삶엔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나는 내 인생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특공무술식으로 말하자면 승급하고 있다고 느꼈다. 20대를 생각하면 30대가, 30대를 생각하면 40대가 좀 더 낫다고 느낀다.

무엇이 나아졌을까. 우선 나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이 나아졌다. 반지하와 옥탑, 노후된 다가구 주택 등에서 한두 명의 룸메이트와 살던 시절을 지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룸과 오피스텔에서 혼자 여유롭게 살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시시티브이도 여기저기 달린 고층 건물에서 산다. 누군가에게는 이 정도가 너무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꽤나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내적 환경이 많이 변했다. 자신을 알아가고, 나에 맞추어 생활환경을 일구어가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다. 과거에 나는 20대를 오직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데 온 시간을 다 썼다고 말할 정도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전보다는 훨씬 발전했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추구하지만 예외성이 돋보이는 창작물을 좋아하고, 무디지만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지만 허술하다. 한편으로 무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탐욕스러운 모순덩어리이며, 일관성을 추구하면서도 예측 불허에 끌리기도 해서 때로는 변칙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학창 시절 내내 체육 시간만 되면 그렇게도 스트레스를 받던 사람은 어디 가고 난데없이 40대에 특공무술을, 그것도 지나치게 열심히 배우는 인간이 돼 심지어 시험 따위를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삶의 단계별로 승급해왔다면 아마도 이런 모순적인 면모를 알고 이해하게 된 덕분 아닐까.


그러므로 만약 내 인생을 스스로 심사한다면, 사범님들이 비록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쉴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지속 가능한 운동 생활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노란 띠를 주셨듯이 내 인생에도 노란 띠, 아니 어쩌면 빨간 띠 정도는 줄 듯하다. 평범하지만 한결같아, 인생의 많은 측면에서 미숙하지만 발전하고는 있어, 어설프면서도 때로는 정확해, 진지한데 웃겨, 이런 유의 평가를 내리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창피함을 자초할 만큼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니, 박수치면서 “합격”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와 같은 모든 보통의 사람들이 인생의 단계마다 저도 모르고 치르는 승급 시험에서 우리 사범님들처럼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길 바란다.


http://aladin.kr/p/bqo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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