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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Feb 11.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04.

나의 서랍.


나의 서랍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회고록을 쓰자,라고 결심한 그날로부터.


공기 중 먼지처럼 유유자적 부유하던 기억의 파편들은 그 순간 앞다투어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글로 남겨달라 소리쳤다.


깊게 잠들어있던 기억들은 날카롭게 되살아났고,

날 것 그대로 휘몰아치는 감정들에 나는 정말이지 무력하게 휘둘렸다.



망각하고 있던 감정들과 기억들은 한 글자씩 모아졌고 여러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쓰다 멈췄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나는 참 많은 것을 묻어두었구나.



좋은 기억들도 물론 있었다. 그래,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싶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정말 마음을 담아 옮길 수 있는 건 아픈 기억들이라니.



그것들을 글로 옮기는 것은 참으로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들을 글로 옮기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열려버린 기억의 틈으로 흘러나온 날 것의 그것들은 수시로, 쉬지 않고 찾아와 나를 두드렸다.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나는 피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그것들에 당해버렸다. 차고 넘친 그것들이 눈물이 되어 나오려는 것을 이를 꽉 깨물어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들은 자신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도록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결국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다. 깊고도 깊은 이 기억의 샘에 빠져버린 나는 이것만이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이 되어버렸다.

이 어설프고도 서툰 글만이.


하지만 그렇다고 날 것의 그것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었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무섭고 두려우니까.



그렇게 계속. 쌓이고 쌓이고 쌓여갔다.

괜찮을 줄 알았다. 이러면 숨이 트일 줄 알았는데,

글로 남겨진 기억들은 더욱 선명해져, 형태를 갖춰, 더욱 커져버린 그 손을 뻗어 나를 옭아매 천천히 숨 막히게 만들었다. 서투디 서툰 이 한 글자 한 글자가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롭고 예리하다.



자꾸 아우성을 친다. 정말 너희는 밖으로 나오고 싶은 거니?



용기를 내어 열 수 있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조금은 가벼워졌을까?


아, 모르겠다. 처음엔 후련했다. 그렇게 숨이 트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참 이상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갑갑하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무방비하게 무자비하게 나는 나를.



그렇게 다시 나의 서랍은 계속 쌓여만 간다. 그러다 문뜩,


내가 정말로 열고 싶은 서랍은 이것이었을까?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달콤하고 얕은 거짓말에 속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나와,

언제나와 같이 모든 것에 눈을 돌려 어쩔 도리 없이 도망치고 싶은 내가 있다.


그 사이 앳된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서있다.


흐르지 않는 눈물을 닦아준다. 참 이상하게도 손가락이 촉촉한 것 같다.


그 아이는 울었던 가?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나의 기억과 감정은 오늘도 하나의 글자, 하나의 문장이 되어.

떨어진다. 튀어 오른다. 그렇게 자국이 되어 새겨진다.




있잖아, 이 자국은 언젠가 지워질까? 아니면 영원히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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