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이름은 덕이.
미리 고백하자면, 이건 취중에 쓴 글이다. 그래서 굉장히 날 것인데 아마 나중에 수정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어쩌면 운 좋게 남아있을지도.
오늘 한 가지, 나의 비밀 아닌 비밀을 말해보려고 한다.
내 몸 어딘가에는 오리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덕이.
추운 겨우내 덕이는 겨울잠 자듯 꽁꽁 숨어있다가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여름이 오면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부끄러움이 많은 그 아이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직까지 거의 없다.
덕이는 항상 그 자리에 존재했다. 나는 숨기지 않았지만 구태여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게 가벼워지는 여름날, 어쩌다 나의 덕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덕이에게서 의미를 찾았고 나에겐 이유를 물었다.
그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는데, 나에겐 그럴싸한 이유가 없었고 덕이에겐 그들이 만족할만한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이를 만나게 된 건 그냥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나를 잠 못 들게 했고(이건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할 상황들은 나를 고통스럽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저 그때의 나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아주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피드들을 봤다. 이전까진 아무 생각도 없던 것들이었는데 그날 본 피드들은 유독 마음에 꽂혔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그들처럼 아름답고 싶었나? 아니 그냥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냥 일탈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사고를 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고민을 했다. 후회를 할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계속 공허해졌다.
그러다 나는 이것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이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후회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의미를 부여하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해서 열심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그런데 찾으면 찾을수록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꼭 의미가 있어야 할까? 누구를 위해서?
나는 그저 핑곗거리,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걸 할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를 준비해 그들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의미가 없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찾는 것을 멈췄다.
그렇게 덕이가 탄생했다.
내가 왜 덕이를 그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당시의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고 그게 덕이였다.
아, 처음에는 새를 그리고 싶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나는 새.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어여쁜 새를 그리고 싶진 않았다. 예쁜 새의 도안은 많았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쁘지 않아도 나는 이해할 수 있는, 그냥 나 같은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덕이를 내 몸에 새기게 되었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후회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회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 나는 후회한다.
나에게 일탈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그래도 하나는 있었다,라는 자유를 주었던 덕이는.
그 덕이는 지금 나에게 각인이 되었다.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덕이는 오직,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덕이는 내가 연약해질 때면, 흐물흐물해져 물러 터진 상태가 될 때면 나타나 나를 번쩍 정신 들게 해 주었다.
이 세상에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오직 나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게 위로가 되면서 서글프기도 했다.
결국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나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덕이는 가끔 나에게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은데.
덕이는 나에게 각인이었지만 그렇기에 위안이었다.
덕이는 또 다른 나였다.
아마 나는 평생을 덕이와 함께 할 것이다.
그래도 한편으론 그런 덕이를 언젠가 지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
나는 이왕이면 덕이보다, 욕심을 좀 더 내보자면 나보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 떠나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나와 덕이, 우리는 아름답고 눈부신 이별을 했으면 좋겠다, 고.
그리고 나는,
결국 너를 떠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