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물레가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이래저래 바빴던 일정으로 이번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물레수업 가는 날이 빨리 다가왔으니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바빴던 만큼 시간이 안 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해서 물레영상을 많이 볼 수 없었다는 거였다. 이전에는 물레영상을 꽤 많이 봤기 때문에 감각을 덜 잃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왜인지 불안했다. 분명 한 주가 빨리 갔는데 체감은 2주가 흘러있는 느낌.
괜찮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한껏 안고 오늘도 공방문을 열었다.
선생님과 인사한 후 수업준비를 했다. 앞치마를 꽉 동여매고 머리를 질끈 묶은 뒤 경건하게 스티로폼박스가 쌓여있는 곳으로 갔다.
저번 수업 때 만든 기물들을 어느 정도 마른 다음에 넣어야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대신 스티로폼박스에 넣어주신 후 이름표를 부착해 주겠다고 하셨다. 내 이름이 적힌 스티로폼박스를 발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물들의 상태를 보았다.
일주일이 지난 상태였는데도 기물들이 덜 말라있었다. 마치 성형하고 얼마 안 지난 것 같은 상태여서 꺼내서 옮기는데 겉면에 나의 지문이 고스란히 묻어 남겨졌다. 선생님이 이 상태로는 굽깎기를 하기 어렵다고 좀 더 말라야 할 것 같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선은 한쪽에 두고 마를 동안 물레를 돌리기로 했다.
이 날은 원래 내가 사용하던 가운데 자리의 물레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자세가 잘 안 잡혔다. 뭔가 계속 불편한 느낌. 팔꿈치를 고정시켜야 하는데 왜인지 그 자세가 잘 안 나왔다.
첫물레를 돌리는데 계속 자세가 불편하고 무언가 어긋나는 느낌이 드니까 중심 잡기에도 그게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그러다 또 두 동강을 낼 뻔했다.
놀란 나는 잠시 물레를 멈추고 다시 심신을 가라앉혔다.
조급해지지 말자, 나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급할 것 없었다. 나는 그저 천천히 진득하고 질척하게 소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의자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그나마 제일 편한 자세로 다시 고쳐 앉았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스트레스받지 말자.
주변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어떻게든 손 끝 감각을 끌어올려 흙의 움직임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원형컵을 2개 만들어내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심 잡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놓긴 했지만 이 2개의 컵은 반죽통행일 것이 눈에 보였다.
저번에는 30분도 안되었는데 오늘은 똑같이 2개를 뽑아냈는데 벌써 1시간이 흘러있었다.
'오늘 뭔가 쉽지 않다.'
이 생각이 든 순간,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저번주의 그 영광이 머나먼 옛날 일로,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느껴졌다.
문뜩 그 대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극장판 짱구 시리즈를 몇 좋아하는데, 그중 핸더랜드 편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대사가 있다.
다들 많이 알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얘야, 인생이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란다.'
그렇다. 인생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물레도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서,
'물레가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 뭐든 너무 쉬우면 재미없는 거야.
나는 이렇게 매번 나의 예상을 뒤엎고 될 듯 말 듯 밀당하는 이 물레에 안달 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빠져버렸던 거였으니까.
다시 한번 정신 차렸다. 저번주의 우연과 운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나는 여전히 초심자이다.
괜히 옆자리에 있던 의자와 내가 앉고 있던 의자를 바꿔보았다. 다시 한번 편한 자세를 찾아 여러 번 움직여보았다. 얼마나 많은 기물을 뽑아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나의 감각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물레를 돌려야 했다.
우선은 선생님과 영상에서 본 중심 잡기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을 흉내내기 위해 되지도 않는 중심 잡기를 해가며 무조건 높게 소지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소지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연습을 반복해 보자.
나의 감각을 익히고 만들자.
거기에 집중을 하며 중심 잡기를 연습하자 전보다 확실히 안정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흙의 움직임이 그 진정되는 감각들이 손에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감각들인지. 다시 물레를 돌리는 게 즐거워졌다.
안정적인 중심 잡기가 되었다면 그다음은 오직 한 가지. 열심히 원형컵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때도 모든 감각을 손 끝에 모으고 모아 흙의 움직임과 속도를 느끼고 익히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헤매었지만 반복하고 반복할수록 점점 어떤 속도가 나에게 맞는 속도인지를 알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서 물레속도가 점점 빨라졌는데, 나에게 맞는 속도를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몸에 들어가는 힘도 조절되었다.
중간에 밑가새 사용을 잘못해 바닥을 드러내버려 버리게 된 것 한 개를 빼고 총 7개를 뽑아냈다.
이 중에서도 분명 몇 개를 버리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뿌듯했던 점은 여러 감각을 느껴보기 위해 다양한 크기로 연습을 해보았다는 점이다. 밑바닥을 좁게도 해보고 넓게도 해보고 옆면을 수직으로 올려보기도 살짝 넓혀서 해보기도 다시 모양을 다 잡아 모아보기도 벽을 두껍게 뽑아보기도 얇게도 뽑아보기도 등등. 감각을 느끼고 알기 위한 연습을 해보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 버리게 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냐, 조금은 슬플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굽깎기를 살짝 알려주셨다. 사실 아직 기물이 덜 말라서 굽을 깎을 정도가 아니긴 했는데 우선 한번 가볍게 보여주시겠다고 했다. 5개 중 그나마 마른 걸로 설명을 해주셨다.
우선 물레 회전판 위에 스펀지로 살짝 물을 묻혀준다. 약간의 물기가 있어야 접착력이 생겨 회전판과 기물이 잘 붙는다. 처음엔 회전판 위에 있는 원형을 보며 중심에 맞춰 잘 올려준 후 기물 위에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삼각형 모양을 만든다. 물레를 살살 돌려주며 양엄지에 기물이 통통 부딪히는 정도를 보며 중심에 맞게 기물을 살짝살짝 옮겨준다. 통통 거림이 없다면 중심이 잘 맞춰진 거다.
중심을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한데 중심이 잘 안 맞춰진 상태에서 굽깎기를 하게 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진, 더 깊이 파이고 더 얇게 파이는 등 굽이 엉망진창으로 깎이게 된다.
중심이 잘 맞춰졌다면 물레를 돌리다 원심력으로 인해 기물이 날아가지 않게 반죽된 소지를 조금 뜯어 삼면, 혹은 네 면으로 부착시켜 고정해 준다. 너무 물기가 있는 소지는 안되고 약간 말랑한 정도의 소지를 이용하는 게 좋다. 기물에 너무 부착시키기보단 살짝 대주는 느낌으로 회전판에 닿는 면을 꾹꾹 눌러 회전판에 착 부착시켜 주는 게 좋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중심 잡기랑 기물 성형할 때는 시계반향으로 물레를 돌렸다면 굽깎기는 그 반대, 시계반대방향으로 물레를 회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물레에 스위치가 있는데 꼭 잊지 말고 굽깎기를 할 때는 시계반대방향으로 스위치를 바꿔주어야 한다.
영상을 보았을 땐 ㄱ자 모양의 굽칼을 많이 사용하는 듯했지만, 초심자는 처음에는 저런 속파기 도구를 이용하는 게 더 쉽고 편할 수 있다.
우선은 테두리인 옆면 부분을 조금 다듬어준 후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움직이며 파 들어가 바닥을 평평하게 맞춰주면 된다. 한 번에 하기보단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눠 평평하게 맞춰주는 것이 좋다. 물레가 돌아가는 속도와 흙의 힘에 따라가지 않게 팔꿈치는 몸에 잘 고정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도구를 쥐고 있는 손도 흔들리지 않게 왼손이랑 오른손 손가락등을 이용해 잘 지지해주어야 한다.
바닥이 평평하게 맞춰지면 어느 정도의 굽을 만들지 본인이 원하는 정도로 생각해서 만들어주면 된다. 딱 정해진 건 없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움직임과 자세, 설명을 열심히 듣긴 했지만 그럴수록 한구석에 불안감이 커졌다.
'할 수 있으시겠어요? 좀 아시겠나요?'
선생님이 해맑게 웃으면서 물어보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흐려진 눈동자로 허탈하게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막상 해보면 제 몸이 못 따라갈 것 같아요...'
저는 몸치니까요.
우리의 선생님은 역시나 괜찮다며, 처음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물레는 정말 감각이라 이거는 많이 해볼 수밖에 없어요. 저도 처음에는 바닥 많이 도려냈어요. 계속계속 연습하다 보면 알게 되실 거예요.'
선생님의 응원은 정말 힘이 되었다. 그래...! 나에겐 연습, 연습 그리고 연습뿐이었다.
아직 굽깎기를 하기엔 기물들이 덜 말라있어서 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신 걸 테스트해보고 싶긴 해서 그나마 덜 말랑한 작은 기물을 가지고 연습을 해보았다.
역시나 보는 거랑 해보는 것은 천차만별이었다. 중심 잡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모양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보니 제대로 중심이 잡힌 건지도 알기가 어려웠다. 도구를 잡은 손은 고정시킨다고 고정시켰는데, 물레의 회전속도와 흙의 힘에 사정없이 요동치고 흔들렸다. 조금씩 살살 사과껍질 깎듯 깎아내가야 했는데 나는 숭덩숭덩 회를 뜨듯이 깎아내고 있었다.
결국 바닥에 구멍을 내고야 말았다. 사실 바닥이 계속 평평하게 맞춰지지 않으니 깎아낼 수밖에 없었는데 점점 바닥이 안으로 푹 꺼지는 게 느껴지긴 했다. 바닥이 얇고 얇아졌다는 뜻이었는데 어쩔 수 없으니 계속 깎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결국 구멍이 뚫리고 나의 첫 굽깎기 연습은 이렇게 막이 내렸다.
아직 기물이 덜 말라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라고 약간의 자기 위로를 하기도 했다.
그래, 오늘은 미리 보기만 한 거였다고, 다음에 다시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 가서 앞으로는 굽깎기 영상만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만든 7개의 기물들 중에 3개는 반죽통행으로 보내고 4개는 살려서 다음에 굽깎기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이 기물들도 다음 굽깎기 때 다 날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그러기 위해서 얼마든지 물레를 돌릴 수 있다.
작품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물레에 대해 도예에 대해 아주 깊고 끈적하게 알고 싶을 뿐이다.
물레는 여전히 내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그렇기에 재미있다.
물레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