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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May 27. 2024

물레공장 재가동합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2주 만에 가는 물레수업. 빨리 물레를 돌리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느긋하게 준비하고 1시까지 가려고 했는데 몸이 자꾸 들썩 거려서 그냥 더 일찍 집에서 나왔다.

아직까지는 걸어서 공방에 갈 수 있을 날씨인 것 같아 들뜬 마음도 가라앉힐 겸 산책도 할 겸 슬렁슬렁 걸어갔다.


오늘은 할 게 많았다. 우선 가자마자 굽 깎기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시간을 봐서 물레성형연습도 하고 싶었다. 저번에 굽 깎은 아이들은 초벌이 되어있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다듬어야 할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다듬고 시약 결정한 아이들은 오늘 나왔을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드디어 공방에 도착했다.

점심시간대 중간쯤 도착해서 공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조용해서 좋았다. 


초벌을 모아두는 곳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가 만든 아이들이 옹기종기 한데 모여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의욕이 더 활활 타올랐다. 좋았어.

나름 계획을 세웠다. 1시간은 굽깎기. 1시간은 물레성형. 그리고 30분은 초벌로 나온 아이들을 다듬는 시간. 이렇게 된다면 정말 이상적일 텐데. 그러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왼쪽 물레에 자리를 잡고 굽깎기 도구를 먼저 세팅했다. 걱정되는 마음으로 스티로폼 박스를 열었는데 다행히 굽깎기 딱 좋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다만 저번에 원통 길게 뽑는 연습 하다 자투리로 만들어두었던 건 2주가 지났는데도 안 말라있었다. 음, 이거 굽 깎을 수 있으려나. 일단 해보기로 했다.

깎아야 할 기물은 총 4개. 1시간 컷을 꿈꾸며 그렇게 2주 만에 나의 물레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1시간 컷은 무슨. 꿈도 야무졌다.

여전히 왼쪽 물레발판은 뻑뻑해서 속도조절이 쉽지 않았다. 조심히 집중해서 굽 깎기를 해야만 했다. 열심히 집중해서일까 구멍엔딩 없이 모두 무사히 살아남아주었다. 물론 고비는 있었는데, 덜 말라있던 작은 물병모양 기물에서 애를 먹었다. 아직 굽 깎기를 하기엔 너무 촉촉했다. 근데 이미 시도해 버려서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을 만큼 해보자' 했는데 하다 보니 밑바닥이 너무 얇게 깎여 힘을 잃어 조금 꺼졌다. 이때 움찔하긴 했는데 크게 나쁘진 않아서 살려두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반이 지나있었다. 역시 1시간 컷은 무리였다.

굽 깎기는 하다 보면 자꾸 욕심이 생겨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다듬게 된단 말이지.

사실상 굽 깎기가 마지막으로 모양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보니 자꾸 더 만지게 되고 살펴보게 되는 그런 게 있다. 게다가 나는 물레성형을 할 때 완성모습을 생각하고 만드는 레벨이 아니어서 우선 만들고 굽깎기 때 어떻게 깎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 시간이 소요되는 걸지도.

아무튼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해봐야 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어 물레성형 한 번은 해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번에는 물레성형 30분 컷을 꿈꾸며 후다닥 물레 돌릴 준비를 했다. 바쁘다, 바빠.

30분컷은 무슨. 이번에도 허황되었다.

크고 길게 뽑아내는 작업은 여전히 힘에 부쳤다. 우선 소지양을 평소보다 많이 해야 하다 보니 중심 잡기에서부터 난항이다. 힘도 더 들어가고 부드럽게 푸는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올렸다 내렸다를 여러 번 반복해 준 후 어느 정도 부드럽게 풀렸을 때, 밑바닥을 평평하게 잡고 중심에 엄지를 최대한 깊게 찔러 넣어 구멍을 만든다. 깊을수록 끌어올릴 수 있는 흙이 많아지기 때문에 나의 짧은 엄지를 최대한 밀어 넣어주어야 한다.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은데 제일 큰 난항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바로 기벽을 끌어올리는 것.

나는 손이 작다. 그래서 손가락도 짧다. 그래서 한 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벽의 높이도 낮다. 결국 어느 지점에서부턴 양 손가락의 힘으로 균등하게 기벽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으니 들어가는 힘과 면적도 작다. 그러다 보니 흙의 힘을 이기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자꾸 내 손가락이 져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어긋나게 돼버린다. 기벽이 균등하게 올라와야 하는데 자꾸 손가락힘이 어긋나 버리니 결국 울퉁불퉁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물결모양처럼.

게다가 물레발판이 뻑뻑해서 섬세한 속도조절도 어렵다. 그래서 더 손가락이 어긋나게 되는 것도 있었다. 가운데 물레자리가 그리워졌다.

그래도 오늘은 저번보다 겉보기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만져보면 울퉁불퉁했지만. 처음 만든 원통 때 흙을 많이 써서 남은 흙으론 크게 만들기 어려울 거 같았다. 그래서 대신 밑면을 좁게 하고 최대한 길게 뽑아보는 연습을 해보았다. 두 번째 했을 때가 속도조절이 진짜 잘 안 돼서 엄청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졌다. 창칼로 비뚤어진 부분 두 번이나 잘라냈을 만큼. 그만하려다가 원통모양 그대로 남기기엔 뭔가 아쉬워서 꽃병모양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망한 거 같기도 했고 모양이라도 그럴싸하게 살려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있었다. 자꾸만 오버되는 타임. 역시 아직 30분 컷은 무리였다.


이럴 시간도 없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아직 남아있던 관문인 사포질에 돌입했다. 바쁘다, 바빠.

하얗게 불태울 준비.

뭘 이렇게 많이 만들었을까. 6개나 사포질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팔이 아려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열심히 불태우는 수밖에. 그래도 두 잔정도는 자연스럽게 무늬를 살려보고 싶기도 해서 가볍게만 다듬고 나머지는 정말 열심히 사포질을 했다. 매끄럽게 태어날 너희들을 위해 내 팔정도는 희생할 수 있어.

30분 열심히 사포질을 해주고 드디어 가장 떨리고 고민되는 시약을 결정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떤 시약을 고르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확확 달라지기 때문에 정말 고민이 많이 된다. 디자인상? 광이 나는 것보단 매트한 느낌이 좋을 같아서 그런 시약들을 위주로 골랐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결국 또 3시간 넘게 공방에 있었다. 오늘은 정말 쉬는 시간도 없이 무슨 공장 돌리듯 했더니 꽤나 벅찼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로.

벅차오르는 감동. 내 새끼들.

그렇다. 정말 마지막으로 예쁘게 구워져 나온 아이들의 굽을 다이아몬드사포로 부드럽게 다듬어주어야 했다. 진짜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다만 회색 컵 하나는 자세히 보니 컵 안 쪽에 돌멩이가 박힌 게 보여서 고심 끝 폐기하는 거로 했다. 돌멩이 주변에 구멍까지 나서 쓰기 애매할 것 같았다.

열심히 다듬고 원장선생님께 소성비 결제를 부탁드렸다. 원장선생님이 내가 만든 아이들을 보며 말하셨다.



'정말 실력이 빨리 느시네요. 이번에 만든 것들 진짜 잘 만드셨어요.'


너무 빨리 잘해지는 거 아니냐고 농담 식으로 덧붙여 말하셨다. '감사합니다. 저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만든 거라. 잘 알려주시기도 하셨고 물레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보기도 했어요.' 쑥스러움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엇보다 원통을 길게 뽑는 게 너무 어렵다고 덧붙여 말하니 원장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쉽지 않은 작업이라 하셨다. 그래서 연습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당분간은 연습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크고 길게 원통을 뽑아낼 수 있어야 다른 작품들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예를 들면 항아리 같은.



다음 수업 때 다시 한번 기벽을 높게 올리는 자세를 여쭤보기로 하고 두 손 무겁게 공방을 나왔다.



역시 물레는 늘 새로워. 즐거워. 짜릿해. 앞으로도 다양한 컵과 잔, 그릇들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비록 이제 4개월 차를 지나가고 있는 나에겐 아직은 꿈만 같은 일이지만 언젠간 나만의 시그니처 도자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에 매진해야지. 원장선생님 말씀대로 앞으로를 위해.

물레공장은 다시 재가동을 했고, 나는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열심히 돌릴 거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나의 물레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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