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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화 Mar 15. 2024

독백, 나의 회고록. 09.

나의 동생들.

나의 서랍 속에 꽤나 오랫동안 묵혀왔던 글 하나를 오늘 꺼내보려고 한다.

사실 별거 없는 이야기이다. 근데 나는 왜,

이 글을 꺼내는 것을 망설여했을까.




나에게는 연년생의 여동생과 6살 아래의 늦둥이 남동생이 있다.

나는 동생이 있어서 싫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도 언니나 오빠가 있었다면, 드문드문 생각한 적은 있다. 원래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빛나보이잖아.

그래도 나는 엄마, 아빠보다 동생들이 더 좋다.



연년생인 동생과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붙어 다녔다. 우리는 함께 동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놀았다. 친구보다 더 친구 같았다.

그런 동생을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주차되어 있는 봉고트럭 위에 올라가는 놀이가 인기였다. 나와 동생도 그날 봉고트럭 위를 올라가는 놀이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생보다 키가 컸던 나는 무리 없이 트럭 위로 올라갔고, 동생은 겨우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트럭 위를 뛰어다니며 놀던 우리는 다시 트럭에서 내려가야 했는데,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트럭에서 내려왔다. 나한테도 그게 수월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동생이 내려올 차례였는데, 막상 내려오려니 덜컥 겁이 났나 보다.


동생은 쉽게 내려오지 못하고 트럭 위에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도 점점 안절부절못했다. 

연신 내려와, 괜찮아, 할 수 있어, 만을 외칠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동생을 번쩍 들어 내려주고 싶었지만, 나도 작디작은 꼬맹이였을 뿐이었다.

할머니를 불러오고 싶었지만 동생을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불안했으니까. 우리는 발만 동동 굴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러던 중 갑자기 트럭에 시동이 걸렸다. 트럭 주인이 온 것이었다. 어린 나는 순간 아저씨가 이대로 동생을 데리고 출발할까 겁이 났다. 그저 이런 놀이를 하자고 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동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봤다.


'언니'라고,

나를 부르는 동생을 보며 어떻게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아주 크나큰 울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 어떻게 상황이 흘러갔는지,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울면서 할머니를 불렀던 것 같고 동생이름도 불렀던 것 같고 그냥 아저씨 하고 불렀던 것 같다. 동생이 여기 있다고 가면 안 된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동생도 같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가 와서 동생을 트럭에서 내려주었고, 트럭아저씨가 우리를 호되게 혼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런 놀이를 하지 말라고 했던 건지, 내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후로 우리는 절대 트럭 근처에 가지 않았다. 

 


그때 동생은 지켜줘야 하는 존재라고 마음속 깊숙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6살 아래 늦둥이 남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엄마는 솔직히 말하자면 눈에 보이게 우리를 차별했다.

얘는 아직 어리잖아,라고 엄마는 변명하듯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그래도 억울했다. 우리도 어려.


매번 엄마는 남동생만 이뻐한다고 질투 아닌 질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별거 아닌 거로도 혼났고 어쩔 때는 맞기도 했는데 남동생은 그런 것 없이, 그럴 수 있다며 다 넘어갔으니까.

그렇다고 남동생을 미워했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이렇게 차별하는 엄마가 야속했을 뿐이었다.


남동생은 그런 우리 사이에 껴서 눈치를 봤다. 그래서였나, 남동생은 오히려 나와 여동생의 말을 엄마말보다 더 잘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아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표현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착한 남동생을 마구 부려먹었다. 심부름이란 심부름은 다 시켰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남동생은 군말 없이 다 해주었다. 주로 돈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너도 먹고 싶은 거 사 먹으라고 했었는데 괘씸해서 비싼 거 사 먹을 법도 한데 착한 남동생은 정말 본인이 먹고 싶은 것만 한, 두 개 사 먹었다.



어느 날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옛날이야기가 나왔는데, 남동생한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나들이 어렸을 때 심부름 많이 시키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남동생은 그건 괜찮았고 오히려 감동받았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근처 맥도날드 가서 햄버거 사 오라고 돈을 줬는데 남동생이 가다가 돈을 잃어버려서 결국 사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엄청 혼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들이 괜찮다고 그럼 카드 줄 테니 이걸로 사 오라고, 너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라고 했다고 자기는 그때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여동생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터졌다. 아니, 그런 거로 무슨 감동까지 받아!



나는 이 둘이 나의 동생이어서 너무 좋다. 동생들이 없는 삶은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다. 너희의 언니이고 누나여서 좋았어. 물론 힘들었던 적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했던 적이 많았으니까.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나는, 그만큼 동생들이 좋고 내가 이들의 언니이자 누나여서 좋았다.



고마워, 나의 동생이어서.



그리고...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남겨본다.

사실 나에게 동생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나만의 아이가 있다. 음... '나만의'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만의'일 것 같은 그 아이. 나의. 동생.




그날은 집에 나와 엄마만 있었다. 원래라면 일하러 나가있을 시간이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온 엄마는 몸이 안 좋다며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엄마는 머리 위까지 이불을 덮고 죽은 듯 누워만 있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방해하지 않으려 엄마방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그저 문 밖을 서성였다. 조심히 눈치를 살피던 나에게 문틈사이로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렸고 어쩐지 서글퍼서 엄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숨을 죽이고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게 '나만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덤덤하게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지만 중간중간 멈추는 숨결과 갈라지듯 메이는 목소리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인연이 아니었나 봐,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한껏 묻어 나왔으니까. 나는 엄마가 애써 덤덤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다. 애들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엄마는 덧붙였다.


방문에서 조용히 멀어졌다. 아, 나는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유도, 의미도 모른 채 나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했다. 사실 돌아보니 그랬다. 

그 아이는 그렇게 나의 가슴속에 묻혔고 아직 가끔 떠오른다.

어쩌면, 나의 동생이 되었을 그 아이. 어떤 아이였을까. 어떤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 가족 중, 누구를 닮았었을까.

아마,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나는 막내동생을 못 만났을지도 몰라.


그러면 마음이 소란스러워진다. 이 중 누구를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을 거야.



묵념에 잠긴다. 그렇다고 나는, 나마저 그 아이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비록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너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너는.

나의 동생이다.




같이 뛰어다니며 웃고 떠들었을지도 모르는 그 아이를 나는 가끔 그린다.



모두가 나의, 내 동생들이다.

소중하고도 애틋한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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