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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Aug 02. 2021

인생은 눈물, 견생은 해바라기

눈물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인생이 뭐라고 생각해요?”

참 진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답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인생이 여행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소풍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딱 떨어진 정답이 있는 건 아니기에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지만 다 맞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 (人生)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어떤 사람과 그의 삶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사람이 살아 있는 구간. (국어사전)


사람들은 인생의 사전적인 의미를 알고 있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는, 인생이 사전적 의미처럼 단순하게 세상을 그냥 살아가고,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복잡 미묘한 감정과 과정들이 뒤엉켜 그 속에서 때로는 주저앉기도 하고 때로는 힘을 내면서 한 발짝씩 걷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이 구간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눈물이었다. 

슬퍼서 눈물, 아파서 눈물, 기뻐서 눈물, 벅차서 눈물…

첫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남편이 사고를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 그때 피범벅이 된 남편을 보고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흘렸었다.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3개월의 간병을 했고, 그 사이 배가 불렀다. 남편이 퇴원을 하고 1년의 재활 기간 동안에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시간 동안 또 다른 많은 일들 속에 항상 눈물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구간, 내 인생에는 눈물이 빠지지 않았다. 


작년 가정에 힘든 일이 생기고 나서 유독 인생,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남편이 죽을까 봐 두려워했던 그 시간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픔의 시간을 지혜롭게 넘기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철이 드는 걸까?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프고 쓰릴수록 되지도 않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일부러 별거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기도 한다.


이런 내 눈물 인생에 5년 전 견생(犬生)이 들어왔다.

주먹 만했던 두 녀석이 다 커서 벌써 사람 나이로 치면 30대 중반이다. 유독 숨도 쉬기 힘들 만큼 더웠던 며칠 전, 두 녀석에게 먹일 수박을 자르고 있는데, 어려운 이웃을 도와 달라는 캠페인이 티브이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가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갈까 봐 걱정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여리디여린 작은 아이의 눈물이 가슴 시리게 아팠다. 어린 인생의 눈물도 한참 세상을 산 중년의 눈물처럼 서럽고 두려워 보였다. 

착잡한 기운을 느꼈는지 곁에서 수박을 기다리던 두 녀석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얘들아, 인생이 뭐니? 너희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해?”

강아지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난 인생은 눈물이라고 생각해. 기뻐도, 슬퍼도 눈물 나잖아.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그렇지?”

나를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들은 아마 ‘관심 없고! 빨리 수박이나 달라’고 외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삭아삭 맛있게 수박을 먹는 두 녀석의 모습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얘들아, 견생은 뭐니?”

생명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녀석들의 삶. 견생은 뭘까 궁금해진다. 가만히 대답 없는 두 녀석을 바라보며 그동안 함께한 녀석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내 얼굴 앞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뛰어다니고, 잠시 쓰레기를 버리고 와도 전쟁통에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은 것처럼 반가워하는 녀석들. 내가 책을 읽을 때도,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도 나만 바라보는 동그란 눈. 자면서도 가족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자동적으로 흔들리는 꼬리…


햇빛을 향해 꽃을 활짝 피우는 해바라기. 녀석들의 견생은 가족만 바라보고 따라가는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 견생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눈물을 흘리니 해바라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물이 지겨울 수도 있는데, 해바라기 견생은 한 번도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괜히 강아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수박을 조금 크게 잘라 준다. 


“인생이나 견생이나 뭐 있겠니? 맛있는 거 먹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내 말에 두 해바라기의 몸과 꼬리가 흔들거린다. 덩실거리며 흔들리는 몸과 달리 얼굴은 나를 향해있다.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은 내 인생이지만, 이제 살아있는 내 삶의 구간 동안 눈물 보다 웃음이 많아져서 이왕이면 두 해바라기가 내 눈물이 아닌 웃음을 바라보면 좋겠다. 

지금부터 인생은, 웃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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