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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람 Nov 14. 2019

용서하는 방법 - ①

감정 교육 독학하기

'기가 막혀, 나한테 평생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보여줘 놓고 내가 결혼을 하길 바란대. 왜 남자 안 만나냐는데.'

 

 염창동의 어느 감자탕집에서, 지옥의 용암처럼 끓는 감자탕을 사이에 둔 나와 친구는 우리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 결혼의 압박에 대해 불평했다. 그녀와는 취미가 맞았고, 또 평생을 매달고 다닌 가족사의 무게가 비슷했다. 가족마다 제각각인 그 아픔의 정도를 어찌 비교하랴마는, 그녀와 나의 경우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 부분이 닮아 있었다. 우리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이유로 내세우며 불행한 결혼을 이어가는 중년의 부부들이었다. 드물지 않은 케이스다. 아버지는 굳이 알려하지 않았지만 그의 심적 학대 때문에 내 어머니의 정신 건강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엄마는 심약한 아들, 즉 나의 동생이 그 일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미칠 것 같은 감정을 털어놓을 누군가를 원했다. 그게 나였다. 학교에 가 있을 때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뛰어내리지는 않았을지 걱정했다. 동네에 구급차의 사이렌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쿵 소리가 울리면 가장 먼저 엄마 생각이 났다. 그게 내가 목도해온 결혼 생활이다. 그런데 나한테 결혼을 하길 바라다니. 감히 뻔뻔하게. 아버지가 그저 평범히 엄하기만 한 아버지였다면 문제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내 은밀한 남성 공포증의 주원인이, 내 생활을 통제하고 분노로 날 채운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심히 염치가 없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건 목구멍 저 안쪽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이 분노가 내 인생까지 태우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고작 스물 넷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조차 못할 만큼 미숙했다. 아버지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동물들의 서열구조와 비슷했다. 자신이 약하다고 판단한 이에게는 저열하고 잔인했지만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거나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경우, 그는 실없이 웃어댔다. 뭔가를 감추려는 사람처럼. 안타깝게도 내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그 서열 싸움에서 패배했다. 아마 엄마의 인생에서 사람다운 사람만 만나기를 원하는 바람에서였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짐승 같은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했던 엄마는 정말로 졌다. 어머니는 맞았고, 거짓말을 한다고 매도당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자신의 편에 서줘야 할 사람에게 조롱당했다. 어린아이의 본능은 동물과 닮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 아버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어릴 때라 지금처럼 내 생각을 구조화할 능력은 없었지만, 동물의 질서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인간의 도덕으로 접근해도 소용이 없다는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겨우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내 동생은 엄마처럼 싸우느니 져 주는 게 덜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는 쏟아지는 지랄에서 방파제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였다. 유감스럽지만.



 방파제 역할에 성취감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지랄을 하면 어머니는 맞는 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한다고 욕을 먹지 않아도 되고, 내가 지랄을 하면 아버지는 동생에게 덜 잔인해졌다. 견제 세력이 하나 생긴 것만으로 아버지의 무례함은 아주 살짝 꺾인 듯 보였다. 다만 나는 이 지랄을 즐길 수 없었다. 이 집에는 새로운 지랄의 물결이 필요했고, 마침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했을 뿐이었다. 그저 생계를 위해서만 회사에 나가는 직장인처럼, 나의 지랄도 생계형이었다.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버지를 혐오했다면 일이 더 쉬웠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평범한 아이였다. 지랄을 하면서도 기대를 했고, 그건 24살이 되어 감자탕에 소주를 까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화는 쌓였는데 기대는 버리지 못했다. 매번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사랑받고 싶어 하지 않는 어린애는 없다. 사랑받는 것은 그 작은 사람들의 권리이고, 작은 사람들이 지칠 때까지 사랑을 퍼붓는 것은 제조사인 부모의 의무다. 간단한 이야기다. 부모는 애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너, 정말 우리 아이가 되고 싶니?', '우리 가족이 되어주겠니?'. 다만 이 조건이 지켜지는 것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정시로 서울대를 가는 것만큼이나 심플하게 어렵기 때문에, 세상에는 나 같은 어른도 만들어지는 법이다. 이런 유년기에서 배운 것을 굳이 찾자면 짐승 같은 사람들을 짐승처럼 대하는 방법과, 나는 아버지의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 쯤일까. 또 부모님도 사람인지라 늘 맞을 리는 없다는 것, 자식도 부모를 버릴 수 있다는 것. 물론 배울 수 없었던 것도 많다. 철저히 독학으로만 익혀야 했던 것들. 그중 하나가 바로 용서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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