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자기 마을:스톡 온 트렌트
시들지 않는 앤슬리의 포셀린 꽃
앤슬리(Aynsley)는 1775년 에나멜러(enameller) 였던 창립자 존 앤슬리(John Aynsley)가 1775년 즈음에 롱턴(Longton) 지역에 세운 도자기 공장으로 알려져 있다. 에나멜러란, 도자기에 에나멜 안료를 이용하여 색칠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실 언제 정확히 앤슬리가 시작되었는지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810년에 도기 제품을 생산하는 앤슬리, 플린트 스트리트(Flint Street)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영국에서 가장 먼저 러스터 웨어(luster ware)를 전문으로 했다는 존 앤슬리 2세의 부고에 ‘그는 은 러스터 웨어를 레인 엔드(Lane end) 지역에 소개했으며 1840년부터 러스터 웨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시켰다.'라고 실렸다고 남아있는 자료로 추측한 것이라 한다.
앤슬리는 꽃 장식으로 유명하다. 스톡-온-트렌트 공장 일대에서는 18세기부터 도자기로 만든 꽃들이 유행이 있었는데 공장마다 꽃장식이 특색이 있다.(글라스톤 뮤지엄 편 참고 https://brunch.co.kr/@dojaki/99)
플라워 메이킹(flower-making)의 전통은 다이닝 테이블에 장식하기 위한 부유층에서 발전되었다. 오래전부터 방에 꽃을 두어 향기를 즐겼던 로마인들은 음식, 꽃을 함께 다이닝 테이블 장식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18세기 유럽 사람들의 눈에는 생화는 너무 평범하고 저렴해서 다이닝 파티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테이블 세팅의 예를 들면, 1694년에 더치스 오브 브룬스위크(Duchess of Brunswick)의 생일 테이블 위에는 전체적으로 아몬드와 색을 낸 설탕, 젤리 과일로 미니 가든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닥에는 노란 설탕으로 모레 바닥을 진짜처럼 재현했고, 그리고 포셀린 꽃을 두었다. 사진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 화려함이 상상이 된다. 아까워서 먹을 수 없었던 아트 그 자체였을 듯!
필자가 앤슬리 공장을 방문했을 때는 팩토리 샵에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팩토리 샵에서는 화려한 색상의 꽃들을 저렴하게 판매했는데, 도매가격도 있었고 비품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손이 떨려서 사진을 흔들리게 찍었나 ㅜㅜ)
앤슬리의 시들지 않은 포셀린 꽃을 보면 1600년대 초기 발전했던 네덜란드의 꽃 정물화(Floral Still –life)가 떠오른다. 특별히 네덜란드 정물화는 부케 형식(bouquets)으로 다른 나라의 다양한 꽃을 한꺼번에 핀 상태에서 한 꽃병에 넣어서 그린 형식이 유행하였다. 왕실과 부유한 상인 고객에게 꽃 정물화는 사적인 컬렉션의 일부분이었고 때로는 한 종류의 꽃, 당시 유명했던 튤립 같은 꽃을 포함한 정물화를 선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요소가 정물화의 가격을 올리는데 한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1]
도자기는 17세기, 18세기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양식의 꽃 정물화도 도자기 타일에 그려서 방이나 궁궐의 한 벽면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통이 자연스럽게 포셀린 플라워 메이킹 전통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강질 자기를 성공시킨 마이센 공장이 18세기 때 명실상부한 포셀린 자기 꽃을 생산했다. 이후 즉시 이러한 포셀린 자기 꽃은 프랑스 뱅센 (Vincennes) 공장과 세브르 (Sevre)에 전해졌고 1750년대에 역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보통은 생화를 보고 따라 만들고 가지와 잎사귀도 붙여서 포셀린 화병에 꼽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브론즈로 꽃받침, 가지, 베이스를 만들어 함께 장식하거나 랜턴이나 샹들리에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하얀 꽃(Bisque-fired flower)만을 생산했다가 세브르 공장이 색을 칠한 꽃들을 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Marie-Josephe of Saxony, Dauphine of Saxony가 그의 아버지 August III of Poland, Elector of Saxony에게 1749년에 선사한 작품. 마이센에 반해 프랑스 도자기 기술을 알리는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도자기 꽃 만드는 전통은 포셀린 플라워 메이킹(Porcelain Flower-making)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대부분 스톡-온-트렌트 공장은 검 아라빅(Gum Arabic)을 섞은 본차이나 (Bone China) 흙을 사용하고 있다.
글라스톤 도자기 박물관에서 플라워 메이커로 일하고 있는 리타 플로이드(Rita Floyd)를 만나서 꽃 만들기를 배우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영국에서 도자기 꽃이 유행했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한창 피크 때는 공장에 80여 명의 여성 플라워 메이커들이 한 공장에서 하루에 420-520개의 꽃을 만들었다고 한다. 각 공장마다 그들 만의 꽃 스타일이 있어서 2년 정도 훈련을 받아야 공장의 모든 꽃들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꽃들은 하얗게 유약 없이 비스킷(Biscuit) 상태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유약 발라서 에나멜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꽃을 만드는 공장 사람들은 여자들뿐이었고 15세부터 은퇴할 때까지 꽃을 만들었다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2012년에 스포드 공장(Spode Original Factory)에서 레지던시를 할 때의 기억이다. 레지던시 기간 내에 워크숍을 하나 진행하였는데, 플라워 메이킹을 주제로 지역인들을 모아 역사가 깊은 버르살람 스쿨 오브 아트(Burslem School of Art)에서 진행하였다. 그때 부파(Bupa)라는 단체에서 알츠하이머 병이 걸리신 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오셨는데, 오랫동안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시던 분이었다. 워크샵 도중에 자신이 예전에 도자기 꽃에 페인팅하는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예전 일을 기억해 내셨다. 진행하고 도와주는 모든 사람이 다 놀라워했다.
영국의 야생화, 가든화 들을 섬세한 일러스트로 기록하는 보테니컬 아트의 전통, 유행과 맞물려 포셀린 플라워 메이킹은 도자기라는 당시 최고의 럭셔리한 물질로 만든 아이템이었다. 앤슬리의 도자기를 보면, 마치 그 화려한 순간을 얼려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절대 시들지 않은 꽃이지만 어딘지 슬픈 느낌도 드는 것은 왜 일까. 화려하지만 지지 않은 꽃이 영국 도자기 문화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현재 앤슬리의 도자기 꽃 장식은 작은 화병이나 도자기 찻잔에 장식하여 판매되고 있다. 예전의 영광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스톡-온-트렌트 지방에서 도자기 꽃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샵에 가보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앤슬리 차이나 Aynsley China
앤슬리 차이나(Aynsley China)에서 ‘China’는 중국이란 나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란 뜻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영어이다. 도자기가 중국에서 건너와서 유명해졌기 때문에 지금도 백화점에 가면 도자기 코너에 ‘China’라고 쓰여있다. 그래서 앤슬리 차이나 공장도 ‘앤슬리 중국 공장’ 이란 뜻이 아닌 ‘앤슬리 도자기 공장’이란 뜻이 되는 것이다.
앤슬리도 다른 공장들이 합병되거나 브랜드로 남은 것처럼 워터포드(Waterford)에 팔렸다가 워터포드가 웨지우드에 팔리면서 웨지우드 그룹에 들어갔다. 그 이후에 다시 아일랜드 벨릭 포터리(Belleck Pottery)로 다시 넘어갔지만, 결국 2014년 스톡 온 트렌트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필자가 방문했던 때는 2015 혹은 201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명한 발색이 아름다운 2973 커피잔부터 도자기 꽃이 가득한 조그만 화병, 1인 찻잔과 찻주전자 세트 등 팩토리 세컨드라 불리는 비품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앤슬리 차이나 공식 홈페이지( www.aynsley.co.uk)도 현재 벨릭 포터리로 연결된다.(https://www.belleek.com/en/Aynsley/cc-19.aspx) 필자가 월간 도예에 처음 앤슬리 관련 글을 기고했을 때도 홈페이지는 그대로였는데, 그래서 닫은 지 몰랐었다. 왠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앤슬리의 도자기 꽃이 아름다워서 만들어보고 싶다면 글래스톤 포터리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도자기 꽃을 만들어 볼 수 있다.(코로나로 시시때때로 바뀌는 현장이라 이 또한 확실치 않을 것 같다)
앤슬리 차이나 주소: Sutherland Road, Longton, Stoke-on-Trent, ST3 1HZ, UK
앤슬리 랜선 여행
앤슬리와 관련한 참고할 만한 랜선 여행 동영상이나 링크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다만, 2020년 유튜버가 닫힌 공장을 촬영한 것이 있어서 링크를 남겨보았다. 지난번 스포드 공장 편도 폐공장 이야기를 하였는데, 전통이 깊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앤슬리의 시들지 않는 꽃이 영원하길.
https://www.youtube.com/watch?v=nSFdDecJp4I
[1]
Walter Liedtke, Still-Life Painting in Northern Europe: 1600-1800, visited 16 June 2015,
http://www.metmuseum.org/toah/hd/nstl/hd_nst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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