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나는 철학을 전공했고, 위대한 철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특히 ‘장자’를 사랑했는데, 20대 가난했던 시절에도 서점이나 헌책방에 ‘장자’ 책이 보이면 꼭 사서 모았다. 나는 결국 지적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꿈이 없어진 나는 20대 중후반 ‘던져진 현존재’가 되어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명색이 철학도인데 평범한 회사원이 될 순 없다고 자위했지만, 어떤 회사도 ‘취업 스펙’ 없는 나를 뽑아줄 리 없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놀고 있는 나를 틈만 나면 괴롭혔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출근 전 라면을 끓여 달라고 하셔서 끓여드렸더니, “대졸 무직자가 놀면서 라면 하나도 제대로 못 끓이냐”고 타박하셨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는 물러설 곳 없이 직업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절박하게 취업을 준비하면서 프린터를 사용할 일이 많아졌다. 하루는 프린터가 고장 났는데 수리센터에 가기는 귀찮았다. 애타게 사용설명서를 찾았지만, 어디에 뒀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짜증이 났다. 손만 대면 폭발할 것 같은 예민한 시기였기에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울분에 찬 나머지 이 사회의 사용설명서가 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률은 모두 헌법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헌법이 대한민국의 사용설명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자’를 좋아했던 덕에 한문을 곧잘 읽을 수 있어서, ‘소법전’을 하나 사서 헌법을 읽어봤다.
헌법에는 내가 그간 그토록 절박하게 고민했던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당위적 판단(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한다는 가치 판단)으로서 헌법이 말하는 인간상은 내가 읽어본 그 어떤 철학서의 그것보다 이상적이었고, 명쾌했으며, 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고 했던 기형도 시인처럼 나는 이상적인 삶이 뭔지만 고민했을 뿐, 그 구체적인 당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헌법에 매료되었고 법을 다루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목표도 가지게 됐다. 목표가 생기니 노력의 방향도 생겼다. 나는 소위 ‘생비법’(법 공부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몇 년 동안 실패를 겪었지만, 노력의 방향을 알고 있었기에 큰 스트레스 없이 끝까지 전진해 나갈 수 있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한 보통 청년들은 취업에 관하여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취업은 현실적으로 경쟁을 동반하므로, 필연적으로 고단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경험컨대 노력의 방향을 깨달아야 그 고단한 시간을 버틸 수 있다. 남들이 하니까 무작정 ‘취업 스펙’을 쌓는 것보다 조금은 천천히 사회에 귀와 마음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은 우연을 가장해서 답을 줄 것이다.
*동아일보에 2020.07.28.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