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결핍을 채울 수 있는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창업자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생산, 영업, 개발… 수많은 과정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결과는 늘 예측 밖이었다. 돈도 사람도 충분히 투자했는데, 왜 성과가 불안정한 걸까? 그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자원보다, 보이지 않는 구조와 시스템에 있었다.
이 회사는 내연기관 부품으로 일정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며 업무는 복잡해졌다. 기존 공정은 효율적이었지만, 신사업을 동시에 운영할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수많은 데이터와 보고서가 쌓여도, 중요한 결정은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
창업자는 회의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프로세스가 없어서가 아니라,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는 규율과 책임의 선이 불명확하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이 없다면, 사람도 돈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영업팀은 전기차 고객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생산팀은 납기와 품질을 조율하느라 바빴다. 부서 간 소통은 이메일과 메신저에 의존했고, 문서화는 느슨했다.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예기치 않은 품질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조직 전체가 흔들렸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신사업 부품 개발 일정이 계속 지연됐다. 원인은 명확했다. 책임과 권한이 모호했고, 절차가 불명확했으며,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돈과 시간만 낭비됐다. 창업자는 깨달았다. 좋은 아이디어와 우수한 인재만으로는 시스템의 부재를 메울 수 없다는 것을.
시스템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결핍은 가장 큰 발목이다. 직원들이 제각각 판단하고 움직이는 순간, 조직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돈과 사람을 더 투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만 커진다.
창업자는 오래된 수첩을 펼쳐봤다. 전통 내연기관 부품 사업을 시작하며 만든 규정과 체크리스트가 있었다. 그때는 충분했고, 직원들은 스스로 움직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사업, 해외 거래, 다양한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환경에서 옛 시스템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밤늦게 사무실 불을 끄며 창업자는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는가?” 단순히 규정이나 프로세스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일관되게 움직일 수 있는 틀과 문화, 책임과 권한의 경계를 말한다.
시스템은 보이지 않지만, 그 부재는 돈과 사람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올바른 시스템이 마련되면, 사람은 제 역할을 하고, 돈은 제대로 쓰인다. 창업자는 결심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체계, 반복 가능한 실행력, 그리고 명확한 책임 구조다.
그의 눈에 불빛이 다시 번졌다. “보이지 않는 결핍을 채우면, 우리는 비로소 성장의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다.” 시스템이 세워지는 순간, 조직은 혼돈에서 벗어나고, 사람과 돈이 제 역할을 하며, 미래를 설계할 힘을 얻게 된다.
이제 리더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체계를 만들고, 어떻게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며, 반복 가능한 실행력을 확보할 것인가?” 올바른 시스템이 마련될 때, 비로소 사람은 제 역할을 하고, 돈은 제대로 쓰이며, 기업은 미래를 향해 움직일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바로 ‘중견기업의 함정⑤ – TF로 시작하는 혁신’을 살펴본다. 작은 팀(TF)을 구성해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실험하고 성공을 체험하며, 이를 기반으로 조직 전체에 변화를 확산하는 전략적 접근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다룰 예정이다.
기업의 성장과 혁신은 단순히 돈, 사람, 시스템의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조직에 연결하고, 체계를 만들고, 확산하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이번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