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모든 걸 가져가는 세상
오늘 뉴스에서는 압구정 아파트가 또 신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네가 화면을 보며 내 쪽을 돌아봤다.
“아빠, 학교에서는 집 얘기를 직접 하진 않는데… 얘기하다 보면 다 티가 나더라구요. 자취하는 애, 본가에서 다니는 애, 슬쩍 어디 사는지 말하는 애들… 근데 강남이나 압구정이면 다들 반응이 달라요. 미팅 자리에서도 그렇고. 그냥 집인데, 왜 거기만 그렇게 특별하게 보는 걸까?”
네 질문 속에는 단순한 호기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은근한 비교 속에서 스며든 작은 불안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거 참 흥미로운 현상이야. 사실 그게 네가 수업에서 들었다는 ‘슈퍼스타 경제학’이랑 맞닿아 있어.”
“슈퍼스타 경제학?” 네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쉽게 말하면 ‘1등이 모든 관심과 보상을 독식하는 구조’야. 실력 차이는 크지 않아도, 톱에 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지. 스포츠, 음악, 유튜브, 그 어느 분야나 비슷해. 최고만 주목받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묻히는 거지.”
나는 예를 들어 손흥민 선수 이야기를 꺼냈다. “실력 차이가 100배나 나지 않더라도, 연봉과 명성은 수십 배, 수백 배 차이가 나잖아. 아파트 시장도 똑같아. 전국에 수많은 아파트가 있지만, 사람들이 ‘여기 최고’라고 생각하는 몇몇 동네가 트로피처럼 빛나는 거지.”
너는 조금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압구정이나 반포 같은 아파트가 바로 그 ‘1등’이라는 거예요?” 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맞아. 사람들에게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성공의 증표’, 혹은 ‘사회적 스테이터스’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그런 아파트야. 위치, 조망, 학군, 커뮤니티, 건물의 브랜드, 설계의 미묘한 차이까지. 다들 ‘여기가 최고’라고 인정하니까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니까 더 인정하게 되는 거지. 말하자면 사람들이 욕망과 관심을 쏟아 만든 트로피야.”
나는 강변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 아파트 불빛들, 보이지? 그냥 집인데, 사람들은 거기서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는 거야. 빛나는 야경처럼, 사람들의 마음에도 반짝이는 위치를 차지하는 거지.”
너는 잠시 강변 불빛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집에서 살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마음 드는 건 자연스러워. 누구나 더 좋은 집, 편한 집을 원하지. 하지만 중요한 건 집값의 차이가 네 삶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화려하게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 돼. 그 트로피 아파트들도 언제나 안전하지 않아. 거래가 적어서 조금만 사고가 나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고, 정책이나 경제 상황에 따라 금세 변할 수도 있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네 얼굴을 바라봤다. “생각해 봐, 몇 건의 거래만으로 신고가가 나오고, 단 몇 명의 투자 심리에 가격이 흔들리는 세상이야. 화려한 불빛 뒤에는 언제든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 있단다.”
네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진짜 안전한 건 없는 거네요?”
“응, 그렇지만 그게 두려움의 이유가 되진 않아. 중요한 건 네가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야. 모두가 쫓는 ‘트로피’만 바라보지 말고, 네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 네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
나는 네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집은 삶의 무대일 뿐, 주인공은 네가 돼야 해. 남들이 쫓는 트로피에 너무 눈을 빼앗기지 말고, 네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너만의 빛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해.”
강변을 걷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작은 대화, 네 손을 잡은 이 산책이, 아파트 불빛보다 훨씬 소중한 트로피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긴 무대에서 진짜 승자는 1등 아파트에 살거나, 남이 정해준 기준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가는 사람임을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