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편영화로 만드는 나만의 이야기
아빠, 요즘 공대도 취업 힘들대요. 선배들 보니까 괜히 불안해요.
네가 밥상머리에서 툭 던진 그 한마디가 아빠는 자꾸 마음에 걸린다. 숟가락을 내려놓은 네 눈빛에서, 아빠는 얼마나 큰 고민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안이 얼마나 깊은지 다 읽을 수 있었거든. 취업 잘 된다는 말만 듣고 공대에 왔는데, 막상 현실은 밤샘 코딩에도 늘 불안해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이라니. 어쩌면 네가 던진 그 질문은 단순히 "내 일자리가 사라질까?"가 아니라,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절박한 물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딸아, 과거 영화감독이 되려면 현장에서 허드렛일부터 배워야 했지. 조감독이 되어 감독의 심부름을 하고, 배우들의 의자를 닦고, 수십 번의 밤샘을 거쳐야 비로소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었어. 그건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촘촘히 짜인 조직에 들어가 맨 아래부터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과 같았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그 과정이 정해진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라. 스마트폰으로도 훌륭한 영상을 찍을 수 있고, 온라인에는 수많은 편집 도구가 널려 있어. 이제 젊은 감독들은 조감독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만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곧바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그게 바로 그들의 포트폴리오이자, 첫 번째 이력서가 되는 거야.
AI가 가져온 변화도 똑같아. 네가 지금 배우는 공학 기술은 어쩌면 AI가 가장 먼저 대체할 ‘허드렛일’일지도 모른단다. 단순한 데이터 분석, 코드 짜기, 문서 작업 같은 일들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니까. 과거에는 신입들이 이런 '허드렛일'을 하며 회사의 시스템을 익혔다면,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지. AI가 조감독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제 "나는 어디에 취직해서 허드렛일부터 배울까?"를 고민하는 대신, "나는 AI와 함께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해.
어쩌면 너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직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그건 AI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철옹성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이미 AI는 수백만 건의 판례를 순식간에 분석해 변호사에게 조언하고,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법률 지식이나 의학 지식이라는 독점적 가치는 더 이상 영원하지 않아. AI는 최고의 ‘지식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AI가 우리의 '지식'을 빼앗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AI는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 즉 '문제 정의 능력'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거든. AI는 세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지 못해. 그저 주어진 질문에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을 뿐이지.
사람들은 왜 이 앱을 쓰다 불편함을 느낄까?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할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코드는 어떻게 짤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데이터 너머의 감정과 맥락,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단다. AI가 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자, 그럼 너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창한 미래를 그리기에 앞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단편영화’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인턴십이나 공모전을 단순한 스펙 쌓기로 생각하지 말고, 너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거야.
첫째, 최고의 질문자가 되어라. AI는 최고의 답변자야. 그렇다면 너는 최고의 질문자가 되어야 해. 학교에서 배우는 공학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 인문,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보렴. 밥 먹으면서,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길을 걸으면서도 말이야. AI가 풀 수 있도록 문제를 던져주는 사람이 바로 미래의 '문제 정의자'야.
둘째, '협업'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가져라. 영화가 혼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듯, AI 시대에는 협업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될 거야.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과 팀을 꾸려봐. 경영학을 전공하는 친구의 아이디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의 감각, 그리고 너의 공학적 지식을 합치면 AI도 상상하지 못한 멋진 결과물이 탄생할 거야.
셋째, AI를 도구로 활용해라. AI는 너의 '조감독'이 될 수 있어. 복잡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필요한 코드를 대신 짜주고, 너의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맡겨. 네가 감독의 시선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AI에게 '이런 장면을 만들어줘'라고 명령하면 돼.
딸아, 지금의 불안한 마음은 당연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가장 좋은 신호야. 과거의 길을 답습하는 대신, 너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라는 세상의 메시지일지도 몰라.
허드렛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네가 정의한 문제를 AI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단편영화'를 만들어. 그 영화 한 편이 너의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줄 거야. 네가 만드는 모든 단편이 곧 너의 이력서가 될 테니.
아빠는 네가 어떤 길을 가든,
너의 첫 번째 영화의 가장 든든한 관객이 되어줄게.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