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차 전략가의 사색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식탁에 앉아 있으면, 가끔 예전 생각이 난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던 시절, 책 한 권을 들고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날들.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곱씹으며 천천히 생각을 익히던 그때가, 지금 돌아보면 나를 만들어준 본질적인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모든 게 빠르다. 유튜브는 수백만 개의 영상을 단숨에 보여주고, AI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정답을 척척 내놓는다. 지식은 더 이상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도착하는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마치 우리가 묻기도 전에 세상이 답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생각하는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자꾸 이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생각하는 존재로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끝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는 건 ‘인문학’이라는 낡은 단어다. 한때 너무 당연해서 손에서 놓았던 그것이, 요즘 들어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유튜브와 AI는 분명 훌륭한 도구다. 대학 강의, 고전 문학, 최신 기술까지 몇 분 안에 훑어볼 수 있다. AI는 핵심만 뽑아 설명해 주고, 유튜브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시각 자료를 제공한다. 이보다 편리한 학습 도구는 없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배운 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생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읽고, 문맥을 이해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때로는 답을 못 찾은 채 돌아서는 그 시간이 있어야만 생각은 내 것이 된다. 누가 정해준 요약본이 아니라, 내가 읽고 내 안에서 소화한 의미가 진짜 배움이다. 그건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천천히 익히고, 나만의 문장으로 바꿔가는 사유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요즘 세상은 질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넣는 순간, 수많은 답이 쏟아진다. 유튜브는 모든 걸 짧고 간결하게 보여주고, AI는 논리적이고 정제된 문장으로 대답해 준다.
그런데 사람은 원래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자주 망설이고, 쉽게 흔들리고, 감정에 치우치기도 한다. 그게 인간인데, 요즘의 기술은 그런 ‘인간적인 속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망설이는 건 ‘비효율’이고, 느끼는 시간은 ‘낭비’로 간주된다.
결국 감각은 무뎌지고, 생각은 얕아진다. 정답은 넘쳐나는데, 스스로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은 줄어든다. 혼란과 모순을 겪지 않은 사람은 결국 자기 삶의 방향을 잃기 쉽다.
AI를 활용해 전략을 고민하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기술은 언제나 ‘도구’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스스로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는 강력한 힘이 되었고, 방향 없이 쓰기 시작하면 오히려 길을 흐리게 만들었다. AI는 수많은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건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나와야 하는 질문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이 방향이 정말 옳은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이 아닐까.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바로 인문학이다.
요즘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면역력’처럼 느껴진다. 콘텐츠와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오히려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감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다.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세상의 불합리와 인간의 모순, 그리고 내 안의 어두운 감정까지 마주하게 한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정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는 학문. 그 질문을 붙들고 살아가는 힘. 그게 결국 우리를 인간으로 남게 만든다.
딸아이가 어느 날 말했다. “아빠, 유튜브에서 좋은 강의 들었어. AI한테도 물어봤는데… 근데 잘 모르겠어.” 그 말을 듣고 괜히 기뻤다. 이제, 생각이 시작될 수 있겠구나. ‘모르겠다’는 말은, 결국 진짜 사고의 출발점이니까.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모르겠다고 말해도 괜찮아. 그걸 오래 붙잡고 생각하는 시간, 그게 너를 만들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