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차 전략가의 사색
모두의 손에 들린 도구는 과연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을까?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급속도로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마치 지식의 민주화가 실현된 것처럼 느낀다. 이전에는 검색으로 찾기 어려웠던 정보조차 자연어 한 줄이면 설명되고 요약된다. ‘몰라서 못하는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정보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무엇’을 물을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갔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구나 GPT를 쓸 수 있지만, 그로부터 깊은 사고를 도출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라는 사실. 기술이 대중화되었지만, 사고의 깊이는 평준화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적응의 속도’ 문제가 아니다. 같은 도구를 쥐고도 누군가는 복사하고, 누군가는 사유한다. 누군가는 아웃풋을 모아 요약하는 데 그치고, 누군가는 재질문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한다. GPT는 평등하지만, 그것을 통과한 사고의 결과물은 여전히 계층적이다.
이는 GPT라는 도구가 가진 역설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접근을 허용하지만, 그것을 통해 얼마나 깊은 사유로 나아가는지는 개인의 질문력, 독해력, 해석력, 표현력에 달려 있다. 도구의 보급은 정보의 민주화를 가능케 했지만, 사유의 민주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GPT는 질문에 답을 한다. 그러나 생각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문을 잘 던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니, 질문 자체를 ‘효율성의 저하’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살아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우리는 ‘정답을 얼마나 정확히, 얼마나 빠르게 맞추는가’를 훈련받아왔지, ‘질문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사유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연습하진 않았다.
GPT는 사고의 파트너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사고의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질문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단순한 정보요구형 질문을 넘어서, 전제와 맥락을 담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답을 수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 대답으로부터 다시 사유의 궤적을 확장하는 재질문이 이어져야 한다.
결국 GPT를 잘 쓴다는 것은 사유의 사다리를 얼마나 길게, 그리고 깊게 내릴 수 있느냐의 문제다. GPT는 정보를 가져오지만, 생각은 스스로의 머리로 해야 한다. 정보는 물처럼 흐르지만, 사유는 우물처럼 파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GPT의 시대가 가져온 또 하나의 착시에 맞닥뜨린다. 모든 정보가 평등하게 흐른다고 해서, 모든 생각이 고르게 솟아오르지는 않는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문제는 언제나 인간의 사용법이다. GPT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검색처럼 사용하다가, 점점 문장을 정리하거나 글을 요약하는 데 쓰다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아이디어를 확장하거나 전략을 구성하는 용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진화를 이루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왜일까? 질문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답하는 법’을 배운 사회에서 자랐다. 정답을 신속히 맞추는 사람은 칭찬받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 생성형 AI라는 도구가 놓이게 되면, 대답을 요구하는 기술은 생겨났지만 질문을 던지는 능력은 여전히 결핍된 상태로 남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GPT는 ‘사고의 민주화’와는 다른 길을 간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언어의 장벽조차 허물어졌지만, 정보는 여전히 ‘재료’에 불과하다. 그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고, 어떤 의미로 바꾸며, 어디에 써먹을지는 개인의 지적 근육에 달려 있다.
정보는 민주화되었지만, 생각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생각은 더더욱 계층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AI의 도움으로 사고가 촉진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고 자체가 퇴화할 수 있는 위험 역시 그만큼 커졌다.
GPT는 결국 사람의 ‘지적 품격’을 증폭시킨다. 고차 사고를 하는 사람은 GPT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저차 사고에 머무는 사람은 GPT를 복사와 요약의 도구로만 쓰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조직 차원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만약 리더가 GPT를 단순히 문서 생산성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그 조직은 AI를 ‘오피스 자동화’ 수준으로만 활용하게 될 것이다. 반면, GPT를 사고의 파트너로 보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낸다면, 그 조직은 AI 시대에 진정한 경쟁우위를 갖게 될 것이다.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구성원들에게 질문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 GPT를 쓸 때 다음의 사고 훈련을 도입할 수 있다.
”왜 이 질문을 했는가?”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내용은 내 업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더 나은 질문은 없을까?”
이런 훈련이 누적되면 구성원들은 GPT를 통해 사고의 깊이를 늘려가게 된다. GPT는 정보를 정리해 주는 비서가 아니라, 사고를 확장시켜 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그 거울 앞에 구성원이 스스로를 비춰보게끔 해야 한다.
GPT 시대에 진짜 리더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맺으며
우리는 지금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의 바다 위에 선 사람들 중, 생각의 닻을 깊게 내리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분명 인간의 사고를 돕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통해 사고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느냐는 철저히 개인의 훈련, 리더의 철학, 조직의 문화에 달려 있습니다.
GPT는 사고의 민주화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 꿈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보의 민주화는 기술이 이루지만, 사유의 민주화는 리더와 개인이 만들어야 하는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