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너 몇 개냐?"라는 기습적인 질문을 이따금씩 받는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열 개라도 부족한 입은 한 개, 만 나이는 스무 개, 지금 담뱃갑 안에 남아 있는 담배는 세 가치, 드라마로 알게 된 술과 함께 먹을 때, 가장 적당한 초밥 밥알의 개수는 이백팔십 개 따위의 엉뚱한 생각에 잠긴다. 또 그러고만 싶다. 하지만,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담긴 속뜻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주제를 알라는 위협이자 억압이다. 나는 '네 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