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by 오가은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는

자신이 어떤 빛으로 피어날지 모르지


다만

딱딱한 땅밑에서 보낸

치열한 숨소리를 기억해


서두르지 않고

흙을 밀어 올린

미세한 떨림을 기억해


홀로 남아

어둡고 젖어 있던

처절한 시간들을 기억해


햇살보다 먼저 온 것은

차가운 흙의 무게였고

꽃보다 먼저 온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의

결심들이었어


봄은 말하지


피어남은

눈부신 찰나지만


자라남은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가던

모든 날 속에서


밀고 올리고

짙어지고

내어주고

견디던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긴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것은 계절이 바뀌면

약속을 어기지 않는

고귀한 빛이 되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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