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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촌닭 Feb 23. 2024

나의 한국어

나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어를 잘한다.

그건 다 엄마아빠 덕분이다.

엄마는 독일어를 못해서 나에게 한국어로만 말했고, 아빠는 독일사람인데도 가족이 없어서 늘 엄마랑만 많은 시간을 보내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 같다. (참 듣고 말하기는 잘하는데, 쓰고 읽고는.... 배우고 있다)

아빠는 전형적인 독일사람이고 한국어는 몇 단어? 정도 안다.  쓰레기통, 아빠, 똥, 물, 우유, 밥, 빵... 뭐 이런 거.

엄마는 독일에 오래 사셨지만 독일어는... 음.....

(엄마말론 엄마는 독일어를 배울 마음이 없다며 온몸이 독일어를 거부한다고 하신다)

둘은 어떻게 대화하냐고?

처음엔 영어로 대화하시다가 우리가 시골로 이사 오고 내가 커가며 자연스럽게 독일어로 대화하셨다는데

내가 보기엔 아빠만 말하고 엄만 늘 대답만 하는 듯.

참고로 우리 아빠는 말이 지 이 이 이이인 짜 많다

엄마가 알아듣든 말든 혼자 계속 말하고 엄마는 진절머리가 난다며 가끔은 대꾸도 안 한다. 아빠랑 아래층에서 얘기하다가 엄마가 위층으로 올라가도 아빠는 계속 얘기한다 끝도 없이... 무슨 얘기 하나고? 회사 정치 세계 날씨 휴가 등등

아빠는 매번 회사 다녀오면 일어난 자잘한 이야기를 모두 쏟아내는데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나면 엄마도 같이 비행 다녀온 것 같다고 한다(아빠는 유럽의 한 항공사에서 일한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한국동화책을 많이 읽어주셨고 나는 책 읽는  못하고 책 듣는걸 참 좋아해서 한국동화책을 많이 들었었다. 지금은 동생이 너무 방해해서 자주는 못 읽지만 그래도 가끔 엄마가 읽어주신다.  

요즘 읽은 책들

참 그리고 오디오클립 듣기도 좋아한다 특히 하나언니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다

어릴 때 엄마에게 하나언니 만나보고 싶다고 조른 적도 있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있을 때는 독일어를 써야 한다.  안 그러면 아빠가 삐지고, 화내고 결국 엄마랑 싸우고 해서 다 같이 있을 땐 독일어를 쓰려고 한다.

엄마가 그러는데 예전에 내가 한두 살 때쯤 비행기에서 스위스승무원분과 잠깐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그분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언어를 듣고 쓰고 자라던 모국어는 아이 스스로 결정한다고' 했단다.  물론 그때 난 아주 어려서 기억이 없지만 말이다.  내 모국어는 뭘까? 나는 그냥 한국어로 말하는 게 독일어보다 더 편하다.

보통 여기서 태어나서 자라는 한국가정의 친구들은 독일어가 더 편하다고들 한다. 적어도 내가 물어본 친구들은 다 그렇게 대답했다 독일어가 더 편하다고.

근데 난 아직까지는 한국어가 편하다.

친한 친구 민기는 내가 말하는 걸 듣고 자기 엄마한테 이랬단다.

"엄마, 유나는 할머니처럼 말을 해, 나도 유나처럼 말하게 연습할 거야"라고... 민기 할머니는 경남 진주에 사시고 우리 엄마는 부산사람이다.

독일에 초등학교 2학년에 이민 온 보미는 독일말을 잘 못하는데 보미엄마아빠가 유나랑 놀면서 독일어 좀 배워오라고 하셨는데 보미는 나에게서 사투리를 배워온다고 보미엄마아빠가 말씀하셨다.  또 그걸 들은 민경이 엄마가 나보고 사투리외교관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다.

책을 읽을 때 가끔 짜장면인데 자장면이라고 찝겐데 집게 이렇게 쓰여있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런 틀린 단어들이 있는데 그런 걸 사투리 라고 하는 걸까? 난 아직 사투리의 의미를 정확힌 모르겠다.

아빠랑 있으면 독일어, 엄마랑 있으면 한국어를 쓰는데 혼자 있을 때 내 머릿속에서 어떤 언어로 생각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니까 엄마는 미안해하셨는데 그것도 이해가 안 간다.

가끔 엄마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내가 한글로 편지를 쓰는데, 엄마는 그걸 읽으시고 피식 웃곤 화를 좀 가라앉히신다.

키노는 영화관이다

3학년 봄방학 때 한국에 갔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한국의 목욕탕에 갔었다. 동생이 어려서 엄마랑 탕에서 놀고 나는 뜨끈한 싸우나를 좋아해서 혼자 싸우나실에 들어갔었는데, 거기 안에 있던 아줌마들이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내가 못 알아듣는 말로 말을 시키셨다. 아마도 영어였겠지? 한참을 듣다 내가 "저 한국사람인데 왜 다른 말로 물어요?"라고 한마디 했더니 다들 웃으시며 말을 셨다.  그 얘길 엄마가 들으시곤 목욕탕 사우나안의 수다가 진정한 줌마수다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한국어 능력은 아빠의 바쁨+엄마의 독일어 부족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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