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전쟁 관련 소식들에만 관심을 두고 매일매일 전쟁전쟁 이스라엘이스라엘... 그러면서 맥도널드 스타벅스 코카콜라 등등 이런 데는 이제 절대 안 간다며 나도 못 가게 했다. 어쨌든 그 결과로 나는 오늘 아빠랑 데모에 참여하러 나간다. 오랜만의 아빠와의 하룬데 데모라니...
데모 마치고 아빠친구집도 가고 온천도 간다고 한다.
어제부터 아빠는 시위에 쓸 커다란 피켓을 만들었다.
피켓 만드는데 옆에서 놀던 얀네가 아빠가 준 볼펜으로 소파에 그림 그려서 아빠가 소리 지르고 잠깐 난리가 났다. 함부르크의 데모장소에 갔는데 나는 사실 집에 두고 온 얀느가 보고 싶기만 했다. 그리곤 신문 파는데서 어린이무덤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너무 불쌍했고, 내가 누군가를 돕는 데모에 왔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거리행진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집합장소에서 누군가 마이크 들고 계속 얘기만 해서 지겹고 춥고 재미도 없고 비도 조금씩 왔고... 지. 겨. 웠. 다. 아빠는 이야기 듣고 박수도 치고 흥미로워하긴 했다.
아빠랑 데모에서
그러다가 시위대에서 나와서 아빠랑 함부르크에 있는 한인슈퍼에 갔다. 한인슈퍼는 아주 가끔 가는 데 갈 때마다 너무너무 좋다. 오늘은 요즘 얀네랑 내가 좋아하는 밀키스를 잔뜩 샀고, 고래밥도 작은 종이상자에 든 것보다 훨씬 더 큰 고래밥이 보여서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몽쉘도 여러 박스 담고 솜사탕, 칸쵸, 사탕 등등등 한국과자와 한국라면은 진짜 사랑이다. 아 그러고 보니 라면을 하나도 못 샀다. 내 눈에 다 너무 매워 보이는 것뿐이라 얀네도 못 먹을 것 같고 해서 그냥 안 샀다.
쇼핑을 끝내곤 아빠와 함께 베트남레스토랑에 갔다. 배도 너무 고팠고 추워서 나는 글라스누들수프를 주문했는데 이게 또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그런데 수프 안에 버섯을 보니 버섯 좋아하는 얀네가 또 생각났다.
또 오늘 함부르크에서 엄청 신기한 걸 봤다
그것은 바로 노숙자 샤워장. 길에 버스가 세워져 있었는데 안에 의자는 없고 샤워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노숙자분도 그럼 매일 샤워하고 깨끗할 수 있겠네 라는데,
"엄마... 그건 아니지, 버스는 샤워할 공간만 제공하는 거지 물은 알아서 챙겨 와야 해 빗물 모아서 찬물에 샤워해야 해" 라고 말했는데 엄마가 검색해 보니 따뜻한 물도 나온다고 한다
샤워버스(구글 검색)
점심을 먹곤 아빠랑 아빠친구 하이코아줌마네에 놀러 갔는데 나는 할 일도 없고 티브이를 봤다. 마침 우리 동네에 인터넷이 다 끊겨버려서 며칠 티브이를 못 봐서 힘들었는데 드디어 티브이를 본다니... 그것도 옆에서 자기 거 보겠다고 괴롭히는 얀네도 없이!뭘 볼까 고르다가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을 독일어로 봤다. 지난번에 볼 때 한국어로 봐서 또 한국어로 보고 싶었는데 바꿀 줄 몰라서 그냥 독일어로 봤는데 엄마는 더 잘했다고 했다.나는 벼랑 위의 포뇨, 토토로 이런 일본만화를 좋아하는데 내 친구 미아(일본엄마)는 그런 건 재미도 없고 언어를 떠나서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도 힘들단다. 참 이상하다 이 재밌는 걸 이해를 못 하다니. 난 미아가 더 이해가 안다.
하이코 아줌마네에서 나와서 아빠랑 온천을 갔다.얀네가 없으니 사우나를 갈 수 있어서 좀 좋긴 했는데, 어린이풀에 아기들을 보니 얀 네 생각이 나서 맘이 좀 쓰였다.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잠이 들었고, 집에 오니 얀네랑 엄마는 이미 쿨쿨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