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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사람들과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을

by 월영 Sep 18. 2024

몇 해전 추석 연휴 때 일이다.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 하나가 CBS FM의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였다. 배우 강석우 씨가 진행하는 클래식 프로그램으로 그날도 무심히 듣고 있었다. 마침 명절을 맞이한  강석우가 자신의 가족사 일면을 '플레이리스트'라는 코너의 사연을 통해 담담히 들려주었다. 


실향민의 자식이었다는 강석우는 명절 때 가족들이 오고 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남한에는 친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양 출신인 어머니께서 이북식 만두를 빚어서 먹었던 게 다였다고 한다. 게다가 부모님도 기독교 신자였기에 차례도 딱히 지내지 않았던 듯.  


다만 아버지는 명절 아침이면 양복을 차려입고 아침에 나가 저녁때 들어왔다고 한다. 강석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이유를 딱히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시 자식들에게 자신이 명절 때마다  어디를 가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연기자가 되고 일산과 파주의 스튜디오를 오가던 어느 날. 자유로에서 북녁 땅이 보이는 오두산 전망대를 보다가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제야 아버지가 명절 때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철이 없던 시절에야 아버지에게 명절 때마다 혼자 어디를 가는지 묻지 않을 수 있었지만 대학생 이후에도 명절 때 아버지가 어딜 가는지 굳이 묻지 않았던 게 이제야 회한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그때 아버지와 동행을 했더라면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하는 강석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 담담함 덕에 강석우의 이야기는 깊게 내려왔다. 


크게 성내지 말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담담한 사람이 되는 게 요즘 화두다. 그러나 성정이 다소 가볍고 감성적이다 보니 담담한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내면에는 늘 이런저런 이유로 자글자글 혼자 잡다한 상념과 불안을 끓이며 산다. 이제 그걸 덜 표출하는 수준까지는 왔지만 여전히 담담함을 체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담담함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덕목일진대 말이다.  


담담함을 체화하기 위해 소박하고 소소하고 소탈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더러 말하고 다니지만 그건 그만큼 내 안에 그와 반대되는 욕망들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욕망들이 또 삶의 질을 높이고 자존을 세울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물음 역시 중요하다는 게 삶을 살아갈수록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가?’는 물음은 명절 때 먼저 가신 분들이 현생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저승에서의 전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명절의 시작은 제사이고 제사의 근원은 현생의 본질을 묻는 산 사람들의 ‘자문의 날’ 아니던가. 


그 답은 알 수 없어도 질문 자체는 잊지 말아야지. 회한과 후회로 누적된 하루를 쌓아놓지 않기 위해서.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순간을, 그 일상을 그냥 흘러버리거나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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