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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방 뮤지엄

에센 시내

by 돌레인

내가 계획한 에센 시내 투어의 시작은 폴크방 뮤지엄(Folkwang Museum)이었다. 마침 자포이즘에 관한 모네와 고갱, 반 고흐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뮤지엄이 숙소 근처에 있어서 전시회장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 역에서 내려 뮤지엄 이정표를 따라 걸어갔다. 걸어가며 내가 정말 독일 거리를, 그것도 용감하게 홀로 다니고 있음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뮤지엄에 도착했다. 개장 전이었지만 사람들이 제법 줄을 서고 있었다. 다들 너무 크다 보니 내 작은 키가 오히려 대수롭지 않아졌다. 드디어 입장. 특별전 값은 무려 13유로였다. 거기엔 상설 전시장은 물론 기관 입장료까지 모두 포함돼 있는데, 내가 독일어를 잘못 알아들어 오디오 가이드기까지 덜컥 지불해 4유로를 더 쓰고 말았다.



손목 띠를 두르면 특별전은 얼마든지 재입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입장이 아주 까다로웠다. 가방은 물론 겉옷까지 전부 보관소에 맡기란다. 독일은 규정이 너무 엄격해서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 그런지 양장 입은 직원을 얼핏 보기만 해도 몸이 절로 굳어졌다. 억지로라도 활짝 웃으며 "구텐탁"이라 말을 걸면 미소로 답해준다.


한참 특별전을 둘러보는데 전부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일본 우키요에였다. 관람객이나 직원들은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을 거다. 수많은 서양 사람들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 괜스레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나마 재미있게 본 것이 상설 전시장이었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반갑고 즐거웠다. 전시장 한가운데 긴 의자가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작품 사이에 앉아 휴식을 취해도 좋을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하루 종일 있고 싶었으나 배가 슬슬 고파 중앙역으로 산책 겸 걸어 나가기로 했다.






폴크방에서 구글 지도를 보며 중앙역으로 걸어가다 보니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였다. 시차 때문에 걷는데도 자꾸 졸려왔다. 다리가 슬슬 아파올 때쯤 중앙역에 당도했다. 찬찬히 둘러보니 지난밤에 트램을 탄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이제 에센 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앙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느 곳에나 있다는 샌드위치 가게인 Kamps에 들어가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전부 해서 5.08유로인데 맛도 가격도 착했다.


아직 3시도 안 됐는데 내가 계획한 곳은 다 둘러본 데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지고 나도 피곤해져서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려면 차표를 또 사야 해서, 아예 48시간 에센 웰컴 카드(14유로)를 구입했다. 다음날도 홀로 시내 투어라 이 카드 한 장이면 48시간 동안 대중교통을 무한히 탈 수 있고 각종 박물관 입장료도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들한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는데, 유럽 여행 중인 아는 형을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어 중앙역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겠단다. 그럼 오면서 엄마 저녁거리도 사 오라 부탁했다.


휴식을 취한 후 나 혼자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어둠이 내릴수록 숙소 근처 노천카페에 하나둘 사람들로 채워져 의아스러웠다. 저녁이 되면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아 거리가 삭막할 줄 알았던 거다. 게다가 비가 또 내기리 시작했는데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뭐라도 사려고 들어갔다. 50센트를 넣고 카트를 빼 매장을 둘러보니 딱히 살 게 없어 그냥 나가려 했으나 왠지 빈 손으로 나가면 안 될 분위기여서 커피 두 개 달랑 담고 줄을 섰는데 계산원 아줌마가 내게 뭐라 소리쳤다. 이 줄은 이제 마감이니 옆으로 가라는 것 같아 재빨리 줄을 바꿔 섰다. 못 알아들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0.49유로 커피 두 개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야상복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숙소 방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들을 발견했다. 그사이 아들이 날 찾는 문자를 폭풍으로 보냈던 걸 그제야 확인했다. 착하게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아들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날 서로가 겪은 일들을 신나게 얘기하며 아들이 사 온 샌드위치에 커피를 곁들여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씻은 후 그냥 쓰러져 잔 것 같다. 시차 적응의 어려움이 엄습해 온 거다.


외국에서 사는 것과 여행은 정말 다르다. 여행을 왔으면 기본으로 그 나라 언어는 알고 오는 게 예의 아닌가?라는 그들의 의식이 우선 맘에 든다. 영어로 물어도 자기네 말로 일단 당당히 응한다. 서로 쫄지 않는 게 포인트다. 그렇다고 기싸움은 아니다. 존중해 주는 마음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에게 당당히 한국말로 응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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