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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닷 디자인 박물관

촐퍼라인 광산지대

by 돌레인

루르 박물관 옆에 있는 레드 닷 디자인 박물관으로 향했다. 옆이라곤 하지만 입구를 찾아 헤맨 덕분에 주변을 산책하게 됐다.


티켓을 사려고 또 웰컴 카드를 보여주니 그날은 관람객이 원하는 금액을 내는 특별한 날이란다. 원래라면 6유로짜리를 할인받아 4유로일 테지만, 내고 싶은 만큼만 내라 해서 깜짝 놀라 기뻐하며 1유로를 꺼내다 더 보태려 지갑을 뒤지는데 그 금액도 괜찮다고 했다. 내가 무척 신나 하니 직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레드 닷 디자인 상(reddot design award)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산업 디자인 상이다. 매년 공모전을 통해 수상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해마다 전시장 모습도 바뀐다고 한다. 이번엔 타이완에서 기획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상설 전시장과 지난해 수상한 작품들이 있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며 총 4층 건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육중한 문들로 꼭꼭 닫혀 있어 대충 문구를 보며 찾아다녔다.


자칫 흉물이 되었을 탄광 건물이 이처럼 멋진 예술 전시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덴 BAUHAUS 운동을 전개한 예술가들의 노력이 있었다. 옛 건물 구조와 절묘하게 배치된 생활용품들의 조화에 그저 입만 벌어졌다.



4층에서 바라본 건너편 거대 탄광 건물은 갱도를 보존한 곳인데 둥근 회전 전망대와 수영장을 만들어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을 창출했다. 꽤 먼데다 시간제 그룹 투어만 입장이 가능해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돌아가려고 촐퍼라인 역에서 107번 트램을 타려는데 도통 오질 않았다. 작고 낡은 역은 점차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전광판엔 107번 트램 선로에 이상이 생겼으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만 줄줄 흘러갔다(대충 때려 맞춤).


한 3,40분 후 급히 파견된 버스가 승객들을 한가득 싣고 왔다. 사람들 틈에 껴 있자니 재미난 광경을 보게 됐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헤드폰을 쓰고 앉았는데 뒤에 앉은 중년 아저씨가 그 젊은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뭐라 했다. 네 짐이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못 앉는다는 말인 듯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되려 성질을 부리곤 짐을 챙겨 뒤로 가버리는 거다. 중년 아저씨의 푸념 섞인 말투, 독일어는 잘 못 알아들어도 대충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야라고 하는 듯했다. 덕분에 할머니 두 분이 자리에 앉으셨다. 내가 양보해 드린 것도 있었지만, 아직도 어른이 할 말 하는 분위기가 참 부러웠다.






곧장 중앙역으로 가려했으나 그 전 정거장인 시청사에서 내렸다. 꽤 번화하다고 들어 일요일에 가려고 했던 곳이다. 과연 쇼핑 매장도 곳곳에 보여 마치 서울의 명동 거리를 방불케 했다. 나도 이끌려 들어간 곳에서 맘에 쏙 드는 옷을 샀다.


잠시 다리도 쉴 겸 케네디 광장 벤치에 앉아 사람들과 거리를 가만히 구경했다. 내 옆으로 어떤 여자가 다가와 앉더니 담배를 폈다. 내 앞으로 한쪽 발을 잃은 가엾은 비둘기가 쩔뚝이며 지나가고, 한 구탱이에선 어떤 할아버지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계셨다. 빈병을 가져가면 단돈 몇 푼이라도 받을 수 있어서란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를 헤매는 행색이 초라한 노숙자들도 꽤 봤다. 어디나 사람들의 삶은 비슷하구나 싶었다.


가까운 역으로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 아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아들이 돌아오자 함께 근처 식당으로 갔다. 일본 초밥집이었는데 안 그래도 쌀밥이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저녁때가 된 탓인지 가게 안은 독일인들로 이미 꽉 들어찼고 자리도 다 예약돼있어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에 나란히 앉았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초밥을 만드는 부부와 주방 아줌마를 흘끗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엔 불고기도 있고 김치도 있었다! 왠지 반갑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홀써빙을 두 남자가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도 젊은 한국인이어서 아예 대놓고 이거 김밥이죠? 하고 물었다. 언어가 편해지니 마음도 놓여 한 줄에 9.5유로나 하는 김밥을 덜컥 주문하고 곁들여 나온 된장국을 들이켜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계산을 하는데 주인아줌마가 잘 챙겨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하셨다. 무척 바쁜 시간대였기에 그래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독일의 한국 식당은 값이 비싸서 먹으러 갈 엄두도 못 냈는데, 비록 일식집이었지만 성실히 사는 재독 한국인 부부를 우연히 만나니 그저 반갑기만 했다. 유럽 땅에선 같은 동양인만 봐도 우선은 반갑다.


어느새 3일째가 저물어 갔다. 그간 밀린 속옷과 양말을 빨아 방 곳곳에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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