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센
10. 24. 금
여행 온 날부터 구름이 껴 흐리던 독일 날씨가 화창해졌다! 기차를 기다리니 독일 아줌마 한 무리가 몰려들었다. 어디론가 나들이를 가는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디나 아줌마들은 집 나가면 신난다.
두 량밖에 안 되는 기차는 한적한 시골 기찻길을 시크한 듯 무심하게 달려갔다. 온통 푸르른 풀밭과 새파란 하늘에 내 눈은 몹시도 시렸으나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지점부터 소들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아주 떼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넓은 풀밭에 방목해 키우는 소들이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한차례 잠시 정차한 기차가 다시 출발하자 화창하던 하늘이 흡사 <폭풍의 언덕>에나 나올 듯한 뿌연 안개로 뒤덮여 서늘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오~ 저것이 말로만 듣던 그 알프스란 말인가!!
퓌센 역에 도착해 코인 로커에 짐들을 집어넣고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왕복 티켓을 끊고 성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내리니 마치 설악산에 오르기 전 같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분 상쾌한 서늘한 그 기운 말이다. 국내 모대기업의 에어컨 이름이 왜 휘센인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에 오르기 전 아래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우린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을 한 덕에 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창구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바로 앞에 호엔슈방가우 성이 보였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바이에른 왕국의 막시밀리안 2세가 살던 별성이다. 이 성에서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인 '루트비히 2세'가 백조성이 지어지는 걸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 호엔슈방가우 성의 관람도 가능하나 우리가 예약한 시각이 따로 있어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백조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또 10분 정도 올라갔다.
백조성에 오르는 수단은 버스, 마차, 도보지만, 이 중 버스를 다들 추천한다. 백조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마리엔 다리 가까이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엔 다리'는 루트비히 2세가 백조성을 짓게 할 때 기존의 위태하게 놓인 다리를 교체시켰다한다. 다리 이름도 그의 어머니 이름에서 땄다.
마리엔 다리에 올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을 잃었다...
오른쪽에 머리를 두고 큰 날개를 고이 접은 백조 형상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과연 명성 그대로였다. 어떻게 찍어도 엽서 사진이 되었다.
다리에서 되돌아가 백조성을 영접하러 길을 따라 걸어가니 저 멀리 호엔슈방가우 성과 알프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성 내부에 도착하니 우리 순서는 아직이었다. 워낙 오래되고 소중한 성이라 관람객 수를 제한해 티켓에 아예 입장 번호와 시간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성 안은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다. 각 나라 언어의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지급해 주는데, 한국어가 최근에 추가되었다! 눈부시게 화려한 방에 줄지어 들어서면 각자 오디오에 귀를 기울여 설명을 듣고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동한다.
이 아름다운 성을 짓게 한 젊은 왕 루트비히 2세는 '비운의 왕', '동화의 왕' 혹은 '미치광이 왕'으로 불린다. 왕이 되기 전부터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심취한 그는 백조를 타고 나타난 기사 로엔그린에 자신을 투영시켰다.
18세(1864년)에 왕위를 계승했으나 절대적인 왕권의 이상을 좇아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을 탈출해 자신이 어려서부터 살던 아버지의 별성인 호엔슈방가우 성에 스스로를 가두고선 아름다운 백조성을 짓게 했다. 1869년부터 짓기 시작한 백조성은 그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1886년에도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1892년 완공).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백조성을 자신이 죽고 나면 파괴하라고 명했으나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후에 히틀러 역시 같은 말을 남겼으나 그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성을 볼 수 있게 된 거다.
1868년 5월 13일, 당시 23세였던 루트비히 2세는 리처드 바그너에게 호엔슈방가우의 폐허가 된 옛 성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재건하겠노라는 서신을 보냈다.
1886년 6월 9일, 정부 대표가 왕을 격려하기 위해 호엔슈방가우로 향했다.
3일 후 루트비히 2세는 백조성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6월 13일, 그는 뮌헨의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