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 전시 @ 국립중앙박물관
연차를 낸 남편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미스트처럼 비가 흩날렸지만 제법 운치 있어 좋았다.
맑은 날의 박물관 풍경도 멋지지만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고즈넉하고 근사한지...!!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대나무 길은 여름이면 더 시원한데 비가 오니 좀 스산했다.
얼리버드로 미리 예매를 한 덕에 키오스크에서 쉽게 표를 출력했다. 연차를 낸 아들도 함께 오려 했으나 늘어지게 더 자고 싶다길래 오후에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남은 표가 아까워 남편이 외국인에게 권했으나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이란 특별 전시를 보러 왔다며 거절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 전시장의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우리가 볼 전시회엔 한국인들이 대부분인데다 표를 이미 온라인으로 구매해 왔다. 입장 시간까지 한참을 서성이다 한 여성분이 홀로 서 있길래 사정을 설명한 후 표를 그냥 드렸더니 매우 고마워하셨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 때부터의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회화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라면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이란 현실 세계를 실감 나게 표현해낸 획기적인 기법이라기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가 더 깊다.
성 제노비우스는 5세기에 살았던, 피렌체의 첫 번째 주교이자 피렌체의 수호성인이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을 포함해 여러 기적들을 행한 성 제노비우스의 삶을 보티첼리는 총 4개의 시리즈로 그렸는데, 2점의 내셔널 소장품 중 하나가 온 거다. 15세기 피렌체의 건축양식을 배경으로 종횡무진 기적을 행하고 있는 성 제노비우스를 기린 작품이다. 나머지 두 개는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는데 모두 가봤음에도 이제야 알게 돼 아쉬웠다.
화려한 색채를 중시한 베네치아 화파 다운 선명한 색감이다. 준보석인 라피스 라줄리를 안료로 만든 매우 값비싼 울트라마린을 저토록 아낌없이 썼다니!!
라파엘은 가장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속에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와 어린 예수 그리고 예수의 사촌 형인 세례자 요한을 많이 그렸다.
독수리로 변한 제우스가 미소년 가니메데를 납치해 올림푸스 산으로 데려가 신들의 술꾼으로 만들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가 배경인데, 그리스 시대 성인 남성과 사춘기 소년 사이의 낭만적인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그림이 큰 편이었는데 네 귀퉁이에 접혀진 자국이 있어 유심히 바라봤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보고 와선지 기를란다요의 그림이 반가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와 보티첼리와 함께 피렌체 르네상스의 '3세대' 화가라고 일컫는다.
16세기 베네치아의 가장 위대한 화가 티치아노의 그림인데, 카메오라 부르는 부조를 그린 그림과 같이 보니 그림 속 여인이 살아있는 듯했다. 피렌체 화파가 정확한 형태 표현의 드로잉이 중심이었다면, 베네치아 화파는 화려한 색채가 중심이었다. 베네치아가 활발한 해상 무역 도시국가였고 북유럽의 유화가 먼저 들어온 데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였음을 감안하면 납득이 간다.
16세기 북부 유럽의 귀족들을 그린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모로니는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인물들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은 온통 빨간색인데다 질감이 손에 느껴질 듯하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제1차 공의회가 열렸던 트리엔트에서 반종교개혁의 사상을 표방하는 그림을 그리던 모로니는 같은 시기에 티치아노를 처음 만났다.
거친 폭력성으로 말미암아 평생 도망자 신세였던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어둠을 깨우는 예술의 빛'은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를 밝혀주었다.
베네딕토 수도회를 위해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복제해온 신심 깊은 사소페라토가 가톨릭 종교개혁 운동의 요구에 부응해 그린 그림인데, 실로 경건해지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요아킴은 식재료를 정교하게 그린 정물화를 통해 사치와 방탕한 삶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4대 원소인 공기, 흙, 불, 물을 주제로 그린 그림 중 물과 불에 대한 그림이 전시됐다. 고전미술의 역사화와 종교화, 초상화 보다 서민에게 친숙한 정물화나 풍경화가 그림의 주요 소재로 떠오른 덴 종교개혁의 영향이 컸다. 물을 위한 생선 그림의 배경 뒤로 한가득 생선을 잡은 고깃배가 보이고, 불을 위한 사냥감을 손질하는 그림 뒤 열린 문으로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앉아 있는 예수가 보인다.
도시 경관을 사실적으로 그린 '베두타'의 대가인 카날레토의 베네치아 풍경화다. 영국 상류층 자제 사이에서 유행한 유럽여행인 '그랜드 투어' 때의 기념품으로 카날레토의 그림은 그야말로 매우 핫했다. 베네치아엔 아직 못 가봤지만 카날레토의 전시회를 뮌헨에서 놓친 탓인지 카날레토 그림만 보면 여전히 가슴 한쪽이 아리다...ㅠㅠ
각각 17세와 16세인 스튜어트 가문의 도련님들을 그린 대형 작품이다. 3년간의 유럽 그랜드 투어를 앞둔 형제는 화려하게 잔뜩 차려입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형제는 6년 후 영국 내전에서 찰스 1세를 위해 싸우는 동안 사망했다. 물감 중에 '반 다이크 브라운'이 있는데 이 화가가 즐겨 쓴 물감색이다.
왕족이나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린 당시 프랑스의 궁정 화가들과는 달리 그뢰즈는 서민들을 그린 대중적인 생활 화가였다. 그림 속 여인은 당시 루이 15세의 공식 정부인 퐁파두르 부인과 비슷한 분위기로 표현됐는데 나도 언뜻 보고선 퐁파두르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도 그림의 소재가 신분과 장르를 뛰어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낭만주의 화가이자 궁정화가인 고야가 그린 여인의 그림 중 내가 예쁘게 그렸다고 손꼽는 여인의 초상이다. 전형적인 스페인 복장인 흰색 셔츠와 검은색 쓰개(만틸라)를 걸친 이 젊은 여성은 스무 살에 25살이나 연상인 남자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고야가 선물로 그려준 그림인데, 엑스레이로 살펴보니 어떤 남자를 그린 흔적이 나타났다. 여인의 머리 부분을 유심히 보니 쓰개 위에 머리를 붙인 듯한 이질감이 들어 신기했다.
그림 속 소년이 너무나 예쁘고 귀여워서 나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다들 홀리며 감상했다. 소년의 이름은 찰스 윌리엄 램턴으로, 제1대 더럼 백작인 존 램턴의 장남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가 7살 때였는데 13살의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ㅠㅠ
내셔널 갤러리가 사랑하는 영국의 국민화가 윌리엄 터너의 그림도 있었는데, 그가 뛰어넘고팠던 클로드 로랭을 빼놓으면 안 된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로랭은 풍경화에 집중한 화가 중 하나인데 풍경을 돋보이고자 등장인물들을 매우 작게 그린다. '작은 곰'을 뜻하는 우르술라는 4세기 때 활동한 기독교 순교자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의 성인이다. 잉글랜드 왕국의 공주 신분으로 로마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쾰른에서 훈족에게 피살당한다. 이 장면은 그들의 비극적인 앞날을 모른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려는 우르술라와 그녀를 따르는 처녀들을 그린 그림이다.
터너의 후반기 그림에 비해 중기 작품은 과연 클로드 로랭 풍의 풍경화란 생각이 들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헬레스폰토스(현재 다르다넬스) 해협의 탑에 살았던 아프로디테의 여사제인 '헤로'는 아시아 청년 '레안드로스'와 사랑에 빠졌다. 헤로는 매일 밤 레안드로스가 물속을 헤엄쳐 올 때 그를 인도하기 위해 등불을 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등불이 꺼지고 레안드로스가 익사하자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헤로는 탑에서 몸을 던진다. 후에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칠 화풍의 조짐도 보인다.
터너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영국의 근대 풍경 화가지만, 두 사람의 그림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컨스터블의 대표작이라면 솔즈베리 대성당과 건초 마차인데, 사진처럼 풍경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터너가 인상주의에 영향을 줬다면, 컨스터블은 밀레 등의 바르비종파에 영향을 줬다.
어느 미술관을 가도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이 있어 자칫 시큰둥해지기 쉽지만, 이 그림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른 뒤 자진해 생 레미의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 간 고흐는 별 볼 것 없는 병원 구석의 잡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 거다. 예술이란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는 능력 아닐까...
사전트가 파리 유학 시절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제목은 앞에 있는 두 개의 와인잔이지만 눈길은 탁자 위 햇빛으로 간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흰색의 유화물감을 덧칠한 건데 멀찍이서 보면 영락없는 빛나는 햇살 아래 그늘진 탁자 그림이다. 뉴욕 매트로폴리탄에서 사전트의 대표작인 <마담 X>를 못 보고 온 게 정말 한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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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읽어놨던 두 권의 책이 모두 르네상스 미술과 종교개혁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 하이 르네상스기와 바로크 시기 사이의 '매너리즘' 혹은 '마니에리즘'에 더 관심이 깊어졌는데 전시회에선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 52점의 전시는 10월 9일까지다.
액자에 껴놓기 좋은 아트숍에서 사 온 그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