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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인 Nov 06. 2019

내게 남긴 유언...

 손위 시누이는 나보다 9 위다.  독일계 미국인과 결혼해  25 전에 독일로 이민을 갔다.  내가 시집살이를   시어머니가  달간 독일로 여행을 다녀오시는  좋았다.  간간히 시누이도 한국에 다니러 오긴 했으나 어려서부터 남편과 사이가  좋아 나도 달갑진 않았다.  그래도 내게 마음을 붙이려 했단  안다.  그래서였을까 독일에서 부고가 날아왔을  몹시 미워하던 친언니를 잃은 느낌이 들었던 ...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시기 1년 전, 어릴 적부터 언니처럼 따르던 10살 위 막내 이모가 집안 화재로 변을 당했다.  응급실에서 막내 이모의 상태를 본 큰 이모가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뇌사로 한 달을 버티던 막내 이모도 결국 생사를 달리했다.  뇌졸증으로 식물인간 상태로 생을 이어온 막내 이모부와 큰 이모부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아버지에 이어 시누이까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독일로 날아간 게 나와 남편의 첫 유럽 방문이었다.  1주일간 시누이 집에 머물며 시누이의 남편도 돌봐줘야 했다.  그분도 몇 달 새 남동생과 아버지를 잃는 큰 슬픔에서 겨우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독일의 장례식은 너무나 적막했다.  시누이도 아버지처럼 갔기에 나는 차마 마지막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같이 간 막내 시이모의 손만 잡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오열 소리에 눈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넉 달 후, 시누이의 남편이 고향인 미국으로 가기 전, 군입대를 앞둔 아들과 단 둘이 독일을 갔다.  에쎈에서 마침 아들이 관심 있어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겸사겸사 가기로 한 거다.  에쎈에서 퓌센을 거쳐 뮌헨까지 기차로 다닌 보름간의 자유 여행이었는데, 매사 비판적이던 내 마음과 눈이 정화된 듯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시누이 남편을 만나 같이 간 뤼데스하임의 한적한 숲에서 남편이 보낸 카톡으로 '신해철'의 부고를 접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나는 남편한테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단, 유화만은 안 됐다.  시누이가 그림을 그리겠다며 집안에 유화 냄새를 풍겼던 싫은 기억이 남편의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수채화를 매우 좋아한다.


내가 한창 그림을 그리던 몇 년 후, 시누이가 내 꿈에 나타났다.  나는 그저 시누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줬다.  시누이의 얼굴이 매우 편안해지는 걸 지켜보다 목이 메이게 울면서 잠에서 깼다.  그냥 미안했나 보다.  생전에 내가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그리게 됐고, 이렇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내 삶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덕분에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진짜로 원하는 걸 '언젠가'로만 미뤄 두지 말고 당장 해라... 돌아가신 분들이 내게 남긴 유언이었다...  




시누이에 대해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는 내 남편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시누이와 남편은 남다른 유년기를 보냈기에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시누이가 독일에서 홀로 고통스러웠을 터다.  나는 그런 시누이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었다.  이제 나도 시누이의 나이가 되어간다.  이렇게나마 글로 풀어놓을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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