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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인 Nov 05. 2019

내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주일...
아직도 실감은 나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갔을까...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무심하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오래고 깊었기에 이런 날이 와도 그냥 무덤덤하려니 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짐인지 잘 알기에 어쩜 내 아이에게만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키우게 하지 않으려 늘 마음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생긴 건... 아마도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란 일어 원서를 번역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유난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 내심 불편했었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한 10대 후반부터 자기네 아버지와 사이좋은 친구들을 멀리하곤 했었다.
 
그래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정이란 울타리를 꾸려나가며 엄마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었는지 모른다.  마주하면 화가 나고 울화통 터지지만, 돌아서면 걱정과 미안함에 눈물짓는 애증의 관계란 말이 딱이었다.  아버지는 자식과의 이런 힘든 관계를 풀려고 노력했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매번 잘 되지 않았고 서로 탓만 하기 일쑤였다.


모든 관계가 힘들었던 아버지... 그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라고 애써 이해하려고 했지만 자식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힘든 상황들에 등 돌렸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르기만 한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 그 책을 번역하며 만감이 교차하곤 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내 아버지를 생각했는지 모른다(그 책은 결국 발간되지 못했고, 다른 이의 손을 거친 일어 교재로 나왔다).


그리고 석가탄신일... 조계사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긴 줄을 엄마와 기다리며 문득 이제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해야겠다란 희미한 마음자리가 생겨남에 스스로 놀랬었다.


그런 후 아버지와의 스쳐 지나가 듯한 대면... 아버지... 란 내 부름에 아버지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 얼굴이 가슴에 남아 아버지께 법륜 스님의 <기도>란 책을 나중에 선물해 드렸다.  내가 그 스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듯 아버지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을 보내시면서 그 책을 다 읽고 마음을 안정시키셨던 것 같다고 엄마가 말해주셨다.  이 한 많고 야속한 세상의 끝에서 마음의 위로를 조금이라도 가지셨길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마지막 가시는 길... 오래전에 이미 서약한 모교인 한양대 병원의 시신기증서를 남기곤 엄마가 안 계신 틈을 타 생을 스스로 마감하셨다.  조촐하게 치른 장례식장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어느새 나는 아버지와의 깊은 감정의 골을 풀고 넘어가고 있었나 보다.  이젠 원망의 마음 대신 아버지가 더 좋은 세상으로 가시길 간절히 비는 마음이 든다.
 
지난주부터 주말마다 엄마랑 마음의 위로를 받으러 조계사를 찾아가고 있다.  마침 7월 백중을 위한 49재가 다음 주부터 시작이라 한다.  정식 신도는 아니지만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단 생각에 엄마랑 정성껏 기도하려 한다.
 
살아계실 때 잘해 드릴 걸이란 후회는 사실 없다.
그저 이렇게 내게 쌓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풀고 가신 것에 더 감사하다.
 
아버지... 너무나 좋은 일 하고 가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왜 내 아버지일까 원망하며 살았던 제게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세속에 품었던 모든 인연과 업장 다 끊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훌훌 가시길 간절히 빕니다.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_()_ _()_ _()_                                


2012. 7. 4.




그렇게 방황하던 때 닥쳐온 일련의 가족들의 죽음은 내게 진짜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종용했다.  

지난 글을 면발이 뚝 끊기듯 끝낸 후 또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며칠 동안 고민했다.  천성이 긍정적인 나를 우울증에 빠뜨릴 만큼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 왔었기에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아직도 '자살'이란 단어에 민감해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만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미움' 또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아버지'를 잃고, '시누이'를 잃고 나서야 알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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