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후 독학으로 그림에 매달리다시피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렸다. 아들의 군 복무 문제가 또 하나의 시련으로 닥쳐왔던 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들이 고3 때였고, 내 생애 큰 수술을 한 것은 아들의 대학 입학식을 앞두고였다. 군입대 전, 아들과 둘이 간 독일 여행은 그래서 서로에게 많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순조롭게 입대한 아들이 건강 이상으로 1주일 만에 집으로 되돌아오고, 넉 달 후 재입대했으나 훈련 도중 부상을 입어 군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거다. 아들을 사이에 두고 왜 군대와 싸워야 하는지... 여차저차 제대일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복학 후 이제 졸업을 앞둔 아들은 취직도 별 걱정 없게 되었으니 '고진감래'란 걸 실감한다(아들은 영어와 독일어 게임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물 그리기를 좋아했다. 순정만화를 곧잘 따라 그려 친구들한테 그림 요청도 종종 받았으나 당시 만화 그리기는 부모 몰래 그려야 하는 거였다. 그래도 교내 미술대회에서 상도 좀 탔으니 그림에 소질이 없던 건 아니었다. 피아노도 잘 치고 클래식 기타도 잘 쳤던 나의 다재다능함은 풍비박산 난 집에선 일종의 불행이었다. 그림만은 언젠가 활짝 펼치고픈 마지막 꿈으로 묻어두면서 꺼내보지 못하게 봉인해 버렸다.
연필소묘로 시작한 내 그림은 수채화 색연필로 접어들면서 소위 포텐이 터졌다. 현실은 힘들었으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무용수 그림은 내 큰 주제이기도 하다. 마땅한 모델이 없어 사진을 보고 그리지만,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리기에 완성이 될 무렵엔 나도 몸이 가벼워진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유연함 뒤에 담겨 있는 뼈를 깎는 자기 절제와 노력에 보내는 나의 찬사이기도 하다.
도구를 수채물감으로 바꾸고 정물화나 인물 초상화, 풍경화도 그리고 있지만, 무용수를 그릴 때 제일 신난다. 아예 댄서 시리즈로 컬러링 북도 제작했는데 고맙게도 온라인 독립출판물로 출간되었다.
http://harubook.com/daybooks/6936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받는다고 했던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화사한 꽃이 아닌 사람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