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아본 삶
단풍으로 가벼워진 조계산 치맛자락이
승선교를 건너는
우편배달부의 바지런한 소음에
살짝 흔들리던 오후,
오랜 세월
절간 입구를 지켜온
浮屠가 눈을 뜬다.
오늘은 무얼 가져왔는고?
슬픈 소식이던가.
혹은 홍매화를 담은
사랑이던가?
답은 명료했다.
내 이리 서두는 걸 보면 모르겠소!
기쁜 소식은 온갖 통증을 참아가며
어렵게 다가서지만
슬픈 소식은 이리 서둘러 다가오는 법,
내 손에 들린 건
달랑 고지서 몇 장과
스님께 전하는 부고뿐이니
나머지는
부처님께 여쭤보시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밤
적막한 산사엔
어둠에 익숙한 꽃이 핀다.
업보를 가르는 냇가 주변,
통증을 이겨낸 달 꽃이
뿌리를 담근다.
다만 바삐 흘러가는 건
배달을 마친 이의 중얼거림 뿐,
“홍매화가 피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