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 architects Feb 21. 2021

반듯하지도, 넓지도 않은 집

Epilogue

저희는 돌곶이에 정착한 부부 건축가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한번,

단독주택에 사는 기쁨과 행복, 집을 지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추억 만들어 주신

CBS 노컷뉴스 김세준 기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 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기록하려 합니다.



돌곶이 집


결혼을 결심했던 2017년,

경매로 땅을 마련해서 직접 집을 설계하고,

같은 해 12월에 입주해서 햇수로 4년째 살고 있습니다.


돌곶이 집이라는 이름은 동네 지명에서 따왔습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불렀던

사과나무집, 모퉁이 집, 초록 대문 집과 같이

집의 위치나 특징으로 불렸던 것이,

저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별한 이름보다는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 산다는 것은,

두 번째 고향이 된 이 동네를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지명을 붙여 이름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고 살고자 했던 계기


저희에게 집이란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작은 도시, 단독주택에서의 추억을 먼저 떠오르게 합니다.  

집은 단순히 건물을 뜻한다기보다,

그 집을 가꾸는 수고와 보람을 포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작지만 마당이 있는 공간,

간편한 차림으로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곳,

산책을 할 수 있는 동네와 같이

일상에서 만들어가는 소소한 이야기로 채워나가는 공간,

앞으로의 인생을 차분히 설계할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러 유형의 집에서 살아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작고 못생겼지만 자꾸 관심이 생기는

지금의 땅을 발견하면서

우리 부부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담긴 집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습관을 만들고

취향이 반영된 공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보살피는

수고로움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지었다고 인생의 목표나 삶이 완성된다고 볼 수 없고,

나이가 들면 저희의 생각과 취향도

변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30대 중반에 가졌던 생각과 취향,

앞으로 하고자 하는 건축의 방향이 반영된 공간이지만,

덜 채워지고 덜 만들어진 생각과 신념들이

살아가면서 집과 함께 나이가 

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삶의 의미, 집의 가치, 둘만의 생활방식과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대단하진 않지만 우리가 주인공인 작고 소박한 공간,

미숙한 것도 많지만

우리의 일상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이 지어지고 우리 부부가 살면서

그런 것들이 좀 더 단단해지고

명확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곶이 집 공간 구성


돌곶이 집은 19평의 오각형 자투리땅에 지어진 집입니다.


1층은 동네 골목과 연결되는 거실, 마당과 연결되는 주방,

2층은 중정과 연결되는 서재와 마루, 욕실로 쓰고,

하늘과 달과 별이 보이는 다락에는 침실이 있습니다.


간결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에

벽면을 가득 채운 붙박이장이나

침대 같은 소파를 두지 않았고,

공간도 벽으로 구획하지 않은 창고 같은 집입니다.

그리고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마당과 중정,

4m의 높은 천장고를 가진 서재가 있는 집입니다.



공간을 채우는 방법


어릴 적부터 지방의 작은 도시, 주택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집에 대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고,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그런 삶의 단편들이

둘만의 장면들로 채워지는 창고 같은 집이라면

저희의 생활을 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가져다 놓아도 도드라짐 없이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는 색,

그렇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색,

쉽게 구할 수 있고 가볍고 가공이 편한 재료,

그리고 그 재료 본연의 색과 질감,

작지만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높은 층고,

그리고 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의 울림,

남편이 만드는 빵 냄새,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빛,

초록 식물이 주는 풍요로움,


그리고 구차한  필요 없이,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편안한 분위기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집과 이웃의 이야기


사실 공사 중 민원이 발생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돌곶이 집은 주변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외부로 향하는창을 최소화하고,

작은 중정을 통해 채광과 환기를 하는

내향적인 집으로 계획했습니다.


그럼에도 집 짓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불편함을 주게 됩니다.

“집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처럼

수많은 사건과 불편하고 얼굴 붉히는 일이 생기게 되지만,

집 짓는 과정에 있었던 힘든 순간들도 살면서,

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집 짓기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삶을 상상하고 설계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협소한 땅에 지어지는 집은

주변과 관계 맺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돌곶이집의 경우

오각형의 자투리땅, 빌라와 다세대주택에 끼여있는 상황,

60cm의 단차, 철거가 필요한 불법 증축 부분까지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보편적인 집과 다르게 담장, 대문, 초인종이 없어서

동네 주민들이 마당까지 들어오기도 하고,

옆집 할머니의 경우에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의 물을 길어 식물들에게 주기도 합니다.


단차를 활용한 경계는

동네 주민들의 잠시 쉬었다 가는 계단이 되었고,

오래된 동네와 이질 감 없이 섞일 수 있는,

도드라지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진 창고 같은 집으로 인해

동네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배경 같은 집이 되었습니다.  



건축가로서, 내 집을 짓는 어렵고 특별한 경험


건물이 생겨나서 사라지기까지,

건물의 생애주기 중에 건축가는 일부를 경험할 뿐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20살에 독립을 했고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10번 이상의 이사를 하고 17년이 흘러 내 집을 짓기까지,

이전에는 상상해 보지 못했던

우리의 삶에 대한 설계를 시작하게 되었고,

시작과 끝을 만들어 가는 첫 경험이 되었습니다.


부지를 찾아보고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알아보고,

처음 내보는 세금 처리하며, 공사할 사람을 수소문하고,

주변 민원 때문에 가슴앓이하는 모든 과정이

건축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하고 싶은 건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https://m.nocutnews.co.kr/news/amp/5499153


이전 25화 우리의 청춘을 닮은 네온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