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가을물이 들어버린 아침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나와 닮은 목소리, 아직도 설렘이 묻어있어 오히려 나보다 젊게 느껴질 때도 있다.
5년 전까진 이 통화의 첫 대상은 아빠였다.
"아침 드셨어요?"
"응, 너는?"
"먹었어요..."
"그래, 엄마 바꿔줄게"
늘 같은 내용이었다. 녹음이라도 해 놓을 걸...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되었다.
아주 가끔 내속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도 한껏 변형된 목소리일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통화의 첫 대상은 자연히 엄마가 되었다.
처음엔 아빠와의 통화처럼 통화가 길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유난히 통화가 길어졌다.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지셨다.
한 번은 깜짝 놀랐는데 엄마의 웃음소리가 소녀 같아서였다.
"이히힛~!" 하는데 어깨가 쏙 올라가고 얼굴을 어깨로 기울인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예뻤다.
웃음소리를 녹음하려면 매번 녹음을 해야 하나...
"난 아직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음으로는. 나이를 못 속이는지 몸이 안 따라준다"
"뭘 하고 싶은데요...?"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기 싫은데~"
"운동하느라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잖아. 까짓 거 죽기 살기로 공부하면 의대 못 가겠나?"
"의사 되게?"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엄마가 어제는 이러시는 거다.
"내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운동을 미친 듯이 하고 싶다"
"어제는 운동하느라 제대로 공부를 못해서 아쉽다고 하더니 운동이라니요?"
"운동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잖아, 마지막에 네 할아버지가 못하게 해서 결국 약대를 간 거 아냐. 그래서 운동을 미친 듯이 해보고 싶다니까"
"운동하면 뭐가 좋은데요?"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거지. 국가대표도 되고. 이 세상 한번 태어났는데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냐?"
"엄마, 운동이 얼마나 힘든데. 차라리 의사 되는 게 났겠다"
"의사가 되든, 운동선수가 되든 최고가 돼야지. 제대로 해서"
그렇다, 엄마는 욕심이 많다.
지금도.
부러운 마음에서 하는 얘기다.
욕심만 많은 게 아니라 실제로 열심히 실천하는 행동파다.
약국운영도 엄청나게 잘하셨다.
몸이 많이 허약해지셨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젊으시다.
그러니까 엄마에게서 소녀 같은 웃음소리가가 나오나 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엄마의 목소리가 약간 느려지고 흐리흐리해지기도 한다.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없어 컵을 놓치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할 정도로.
소녀, 엄마의 과정을 다 거치고 할머니의 과정을 지나고 있기에 가능할 일일 것이다.
딱 한번 엄마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하지 못할 말을 전화로 한 적이 있다.
"엄마, 사랑해"
(이 시점에서 난 엄마가 "너 무슨 일 있니?", "별소릴 다한다" 뭐 이런 반응을 할 거라 예측했고,
만약 그렇다면 난 뻘쭘해서 어쩌나~했었다)
"나도 사랑해, 말하지 않아도 네 마음 다 알아. 늘..."
세상에 그토록 다정하고 따스한 목소리에 난 그만 목놓아 울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엄마의 목소리, 웃음소리.
아빠의 목소리도 녹아있는 엄마의 소리.
오래도록 들었으면 좋겠다.
방금 전화를 끊었는데도 엄마의 소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