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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Nov 01. 2024

방울이

이별 II

쪽진 흰머리의 증조할머니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걷기도 하셨겠지... 어쨌든 우리 집에 오셨다. 할머니의 여러 짐 중에 유독 꿈틀거리는 보자기가 있었는데! 그 실체는 강아지였다. 강원도 시골 할머니가 어찌 강아지 이름 외국 이름으로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강아지의 이름은 '벤'이었다.  함께 살게 된 지 얼만 되지 않아 할머니는 걸음을 걷지 못하시게 되었고 엉덩이를 밀며 다니셨기에 외출이 힘들었다. 벤은 실내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아니었기에 할머니는 벤을 잘 볼 수가 없었다. 벤이 보고 싶어 져서 벤을 데려오거나 날 밖으로 데려다 달라 소리를 치실 때 들어주지 않으면 "제길... 지미"(じみ 지미. 수수하다, 검소하다는 뜻의 일본어 표현이나 좋은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일제시대를 경험하신 할머니의 욕설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할머니가 "지~미" 라면 "카~터"라고 신나게 후렴구를 붙였다. '지니 카터'는 예전의 미국 대통령 이름이다)라고 욕을 하시며 포기하셨다.


나날이 쪼그러지는 할머니와 달리 벤은 당당하고 아름다운 개로 성장하였다. 할머니는 아흔아홉에 하늘로 가셨고 벤은 할머니 대신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다. 벤은 묶여있지 않았는데 건강의 상징이라도 된 듯 새끼를 많이 낳았다. 한 번에 3~4마리를 낳았다. 그것도 자주... 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새끼들은 모두 지인들에게 선물이 되었다.


벤이 원숙한 자태를(실은 좀 게을러진? 그리고 왠지 우울해 보인) 보일 때쯤 강아지를 섯 마리나 나았다. 이상할 정도로 힘들게 출산한 벤을 위해 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남기기로 결심했다. 왠지 벤의 마지막 출산일 것 같다는 예감도 들어서였다. 진짜 그랬다. 더 이상의 출산은 벤에게 없었다.

섯 마리의 강아지 중 유독 예쁜 녀석이 눈에 들어왔지만 우리는 공평하기로 했다. 외양뿐 아니라 똑똑함과 체력을 겸비한 녀석이 벤의 유일한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테스트를 실시했다.  

여기서 우리란 오빠와 나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이 얼마나 공평한 평가를 하였을까? 지금에서야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다. 장애물 뛰어넘기, 숨겨놓은 먹이 찾기, 유혹을 이겨내기(먹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아닌 주인에게 오기 등), 담력훈련 등이 포함되었다. 다행히 가장 예쁜 녀석이 1등을 했다.  우리는 그 녀석에게 '방울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나머지 녀석들은 입양을 보냈다.


처음으로 힘겹게 나은 새끼와 같이 살게  된 벤은 다시 명랑해졌고 방울이가 밥을 다 먹은 후에야 밥을 먹을 정도로 방울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벤은 멋있었고 방울이는 사랑스러웠다. 방울이는 한번 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예쁘고 귀여웠다. 개의 나라가 있다면 분명 방울이는 멋진 공주님일 거라 확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울이가 사라졌다.


작은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오셨다. 방울이를 찾으며.

"방울이가 사라졌어요"

"그게... 방울이가 어제 내 꿈에 나왔다. 내가 차에 치이려는 순간 방울이가 나타나 나 대신 차에 치였어. 이 꿈이 너무 생생해서... 혹시라도 방울이에게 뭔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방울이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나 대신 죽었지..."


우리는 방울이를 찾아 헤매었다. 저녁노을이 다 기울고 음산한 어둠이 찾아올 때,

"여기다, 여기. 방울이야~" 막내 삼촌이 소리쳤다.

방울이는 시냇물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추울 텐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입에는 거품이 흘러나와 있었다.

방울이가 죽었다.

작은아버지를 대신해 방울이가 죽었다고 모두가 믿었다. 보통 개가 아니기에 주인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방울이는 우리에겐 그냥 개가 아니었다. 방울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1주일 동안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방울이를 애도했다. 분명 하늘나라(물론 천국)에 가서 우리를 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 방울이를 위해 슬퍼했다. 우리는 한동안 우울했다.    



벤은 다시 우울해졌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신기한 일이 생겼다. 떠돌이 고양이가 벤과 친구가 된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찾아오기에 먹을거리를 주었더니 어느새 떠나지 않고 벤 옆에 있었다. 할머니가 된 벤과 앳된 고양이가 가족이 된 것이다. 그래도 개와 고양이는 앙숙이 아닌가 걱정하여 고양이 집을 마련해 주었지만, 고양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벤의 집에서 함께 잤다. 고양이 이름은 '나비'라 지어주었다.

우리는 나비가 방울이가 보낸 선물이라 생각했다.

방울이는 그런 아이니까. 죽어서도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넉넉한 강아지.


내겐 여전히 나의 강아지는 '방울이'하나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지만 방울이의 생김새는 선명하다.

가슴에 묻었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함께 한 시간은 불과 2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방울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을 벅차게 한다. 그냥 좋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방울이와의 이별은 진짜 이별일까? 이렇게 생생한데?

진짜 내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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