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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Jan 26. 2024

마주침, 문이 열리다.

Contact! 마음의 문이 열린 후, 만남은 시작된다.  


"선생님, 마음을 다칠 수도 있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

"제 동생도 상담하기로 했다면서요, 근데 동생이 원래 말이 워낙 없어서요. 상담시간 내내 한 마디도 안 할 수 있어요. 그게 선생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신경 쓰시지 말라고요"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너무 좋다. 네게 그런 말 들으니까. **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지?

"... 중2 여름방학쯤..."

"그래, 그쯤이었어. 딱 네가 지금의 네 동생 나이 때 우리가 만났지. 처음 기억나니?"

(**가 살며시 웃는다)

"저도 아무 말 안 했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런데 지금은 내 걱정까지 해주잖아.  **야, 동생 만나도 선생님 상처받지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정말 고마워~"


나는 직업 특성상 내가 정의하는 'contact'의 경험을 자주 한다. 내게 'contact'는 마주침이다.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 나와 그의 세계가 접속되어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게 되는 첫 순간을 나는 '마주침'이라 부른다.


중학교 2학년이란 옷을 입은 소년이 왔다. 짧은 머리여서 내리깐 눈 아래 눈빛이 궁금하다. 여전히 눈빛을 보진 못했다. 그래도 생각보단 대답을 잘한다.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아빠가 보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뭐 하며 지내요?"

"게임하거나... 누워있어요"

"친구들하고는 어때요?"

"그냥 별로 신경 안 써요


또르륵. 땀이 소년의 얼굴 옆선을 따라 흘러내린다.

또르륵. 땀이 두 줄, 세 줄 연달아 흐른다.

닦으면 좋으련만 소년은 미동도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있다.

'닦아주면 싫어하려나. 땀이 많이 나는데... 좀 지켜보자'

그러나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더니 땀을 닦는다. '실수 한 건 아닐까, 휴지를 줄걸'

소년은 내가 땀을 닦아준 것을 모른다.  아니 모른 척한 걸까? 다시 또르륵. 소년의 땀이 흐른다.

"땀이 많이 나는데, 여기 휴지..."

"땀?" 휴지를 받고서도 땀을 그대로 두고 있길래  내가 대신 닦아준다.

흠뻑 젖은 휴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땀이 나는 대도 모르네... 어디 아픈 건 아니지요? 더워요?" 그제야 소년이 눈을 보여준다.

"선생님, 여기...."

소년이 왼쪽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게 내밀며 배시시 웃는다.

"홀딱 젖었어요"

소년의 땀은 얼굴뿐 아니라 바지를 흠뻑 적셔놓아 휴대폰을 든 손에서 땀이 떨어지고 있었다.

"제가요, 땀에 홀딱 젖었다고요. 하하핫!!!" 

"정말 홀딱 젖었구나!"

눈빛을 컨택한 우리는 호탕하게,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그리고 소년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난 그의 마음으로 들어갔다. 이제 소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 얘기를 그리 잘한다고요? 참 희한하네요. 부럽기도 하고요" 소년의 아빠는 놀란다. 한번 다녀오고 절대 안 갈 줄 알았던 녀석이 두 달을 성실히 상담을 다녔다.

"선생님, 비법이 뭐예요? 어떻게 입을 열게 한 거예요?"

"글쎄요, 비법이랄 게 있냐요? 그저 마주침의 순간이 있었어요..."

그렇다. 예기치 않게 둘만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가 연결됨을 느낀다. 조금은 부끄러운, 보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들켰을 때 왠지 편안해지면 더욱 그렇다. 내가 입고 있던 딱딱한 갑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나로 상대를 마주할 수 있다. 갑자기 소년이 땀을

닦아주던 내 손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지가 아닌 손으로 자신의 땀을 닦아줄 때,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이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아까 맘대로 손으로 땀 닦아서 미안해, 나도 모르게..."

"아니요, 정말 괜찮았어요"

"어쩜 그리 둔해. 자신의 몸에 관심이 없어? 더운지, 추운지. 아픈지..."

"원래 잘 몰라요. 몸 그까짓 것 중요하지도 않아요"

(마주침 이후 바로 소년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소년은 사실 외로왔던 것이다. 소년의 엄마는 홀로 놀기 선수여서 아이들과 스킨십도 대화도 자주 하지 않았다. 소년도 그 방식에 익숙해져 타인과의 친밀함이 어색해서 피했고 심지어 자신의 몸과도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손길, 그리고 자신의 땀이 만나는 순간 아이가 되었다.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장난이 치고 싶어지고 말이 많아지게 되었다. ^^


상담 장면에서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마주함이 없다면 공허한 대화가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 마주함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대를 향해 내 시간을 고스란히 내어주고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는 낯선 장소에서 경험하기가 쉽다. 여행을 가거나 루틴에서 벗어나 좀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나의 사람들과 오랜만의 마주침을 경험한다면 아주아주 기쁘고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누군가와의 마주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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