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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Jan 29. 2024

똑. 똑. 똑

용기 내어 내 이름을 말해요

'아직도 망설이시나요? 저는 기다릴 수 있지만, 벌써 1년이 흘렀어요.

"말해야 할까? 말해도 될까? 말하고 싶다."를 되풀이하는 365일의 시간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는 저도 당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나를 알린다는 것이, 나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 이름을 말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최근 '싱어게인'을 재밌게 보았다. 탈락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경쟁에서 떠나간다. 최종 7인(원래는 6명인데 시즌3에선 7명으로)이 된 1등 후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하게 된다. 무명에서 유명으로 바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는 건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과는 달리 익명, 혹은 무명으로 있는 것이 편한 사람들도 많다.


상담실의 문턱이 아직도 높은지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 그중 본인의  이름을 밝히고 상담하기까지 최장기 기록을 세운 챔피언이 있다.

"따르릉"

직원인데 내방하긴 싫고 익명으로 전화상담만 하고 싶다고 하셨다. 직원임이 증명이 돼야 상담 대상자가 되는데, 익명이니 증명이 안된다. 방법은 전화번호로 사람조회를 해보는 것. 전화를 끊고서 사람조회에서 번호로 검색을 해보니 나오지 않는다.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내용상 분명 직원이라는 확신은 들었다. 계속해서 누구인지를 밝히려 하면 상담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믿고 가보자. 그렇게 시작한 전화상담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그분은 분명 핸드폰을 2개 이상 가지고 있다. 공식휴대폰과 사적인 휴대폰. 누군지는  모르지만 점점 나무명(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씨에 대해서 아는 게 아주 많아졌다. 자신을 밝히지 않는 것부터가 나무명 씨의 성격이 만만치 않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과거의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현재의 나를 괴롭히고 과거의 나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무명 씨와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상하게 나무명 씨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무명 씨의 이름을 내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나무명 씨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렇다. 나무명 씨의 말들이 공허한 몸짓으로 다가왔나 보다. 실체가 없는, 바람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몸짓.

1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전화가 걸려왔다.

"따르릉~"

나무명 씨였다. 날카로운 말투에 이성적인 논조가 사라졌다. 아니 아예 망가져서 어눌한 말투에 성생니님~이라니! 뭔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침부터 술이라도 드신건가? 불안이 급습해 왔다.

"승상님~저예요... 대장내시경... 하고 누워 있는... 데 선상님 생각이 나서... 내 이르믄 ***... 으흐흑"

나무명 씨는 많이 울었다. 이름을 몇 번이고 말하며 창피하다고 하면서도 끄억끄억 울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상담실에 방문했다.


나무명 씨에서 나유명 씨(^^)로 바뀌자 그는 내게, 자신에게  실체가 되었다. 자신을 꽉 조여맨 갑옷을 벗어버리고 우리는 훠이훠이 만났다. 그동안의 공허한 말들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는 지금 현재의 자신의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천천히,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가 이름을 말해준 용기가 고맙다. 그 용기는 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가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주선희 작가님 그림

이름은 나라는 사람을 현실에 정착시켜 주고. 누군가에게 내 정체성을 느끼게 해 준다. 가장 친근한 내 이름을 입고서 사람들을 만난다.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하게, 함부로 남을 대하지 않게.

이름은 나를, 당신을 예쁜 꽃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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