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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7. 2024

사춘기 딸과 홈베이킹(6)

 맛을 느끼고 파~

처음 만든 휘낭시에

재료: 무염버터, 계란 흰자, 박력분, 설탕, 꿀, 소금, 아몬드 가루

엄마 : 너무 바삭거리는데? 그 뭐냐 식빵 튀긴 거...

으니 : 러스크?

엄마 : 맞아, 그 수준인데.

으니 : 너무 하네... 식감만 그렇지 맛은 정말 달라!

엄마 : 그런가? 맛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니까, 내가. 바삭거리니까 식빵 튀긴 것 생각만 난다니까...


으니는 무엇하나 허투루 먹는 법이 없다. 간단히 먹는 유부초밥만 해도 그냥은 안된다. 하다 못해 참치마요가 살포시 올라가야 한다. 계란말이를 해도 불조절을 기가 막히게 해서 천천히 돌돌 만다. 바삭거림을 위해 전자레인지는 No, 에어프라이어에 빵이며 튀김을 데워 먹는다. 시간이 없을 땐, 전자레인지 1~2분 후 다시 에어프라이어 이용. 맛이 완전히 다르다나? 나는 어차피 입으로 들어가면 다 비슷한데 으니의 음식에 대한 디테일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덕분에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도 하는데, 고기를 구울 때 엄마는 제외다. 우선순위는 아빠고 아빠가 없을 땐 차라리 본인이 굽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소고기도 바짝 구워 먹는 엄마에게 절대 굽게 할 수는 없다나?ㅎㅎ


내가 가지지 못해서일까? 음식 맛을 알고, 제철 식품이나 지역특산물에 감동하며,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1~2시간의 줄 서기까지 즐기는, 맛 애호가들이 많이 부다. 나는 배고프면 다 맛있고 배부르면 다 그저 그런 편이다. 냄새에도 민감한 편이라 익숙한 소, 돼지, 닭고기를 제외한 고기들 취약하다(대부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위로도 해보며...ㅎㅎ). 몇 년 전부터 양고기 전문점들이 많이 생겼다. 우리 집도 양꼬치를 먹으러 종종 가는데, 나는 냄새가 좀 불편해서 얼마 먹지 못한다. 으니는 정말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자~알 먹었다.


엄마 : 냄새 안 나?

으니 : 나지.

엄마 : 근데 괜찮아?

으니 : 당연하지, 양고기에서 양냄새가 나는 게. 그럼 소고기에선 소냄새가 안 나나? 맛있어. 양~


맛에 대한 편견이 없는 딸이 대견하고 먹음에 있어선 내가 아이고 으니가 어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 내가 으니만 할 땐 나물은 웩!이었다. 나만 그랬나? 뽀빠이가 나와서 시금치를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선전까지 할 정도니 아이들은 푸른색 채소는 다 웩!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난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나물의 맛을 알게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물이 조금 맛있어지면서 이제 어른 입맛이 되어가나~뿌듯해했는데, 으니는 태어나면서 어른 입맛이다. 나물은 나물의 맛대로, 고기는 고기의 맛대로, 생선은 생선의 맛으로 맛있게 먹을 줄 안다. 맛있게 먹을 줄 아니까 손맛도 있어서 으니가 하는 음식은 맛있다.


유니 또한 일찍이 어른 입맛에 일가견이 있었다. 유니가 3살 때 '아기학교'란 데를 다녔는데, 아이들은 대충 먹이고 사실상 엄마들의 식사가 주였다.  아이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보쌈에 강된장 비빔밥을 엄마들 이상으로 맛나게 먹어치워 엄마들의 환호를 자아냈던 유니, 식당을 가면 늘 비슷한 메뉴 혹은 시그니처 메뉴를 택하는 나에 비해 새로운 메뉴를 과감하게 시키는 유니, 그런데 그 메뉴가 늘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그래서 잘 모를 땐 유니가 선택한 메뉴를 믿으면 된다!^^ 유니를 동일시하는 으니가 언니의 대담한 식욕과 입맛까지 닮아버린 후, 자신만의 세심한 맛 감각이 추가되었으니, 맛을 잘 모르는 엄마에겐 으니가 절대적인 우상이 아니겠는가?ㅎㅎ

몇번 뒤집히고 1시간 반 만에 옷벗은 꿀고구마!

최근에는, 으니와 유니가 합작하여 고구마를 굽는데 자그마치 1시간 30분이 걸려 꿀이 뚝뚝 떨어지는 군고구마를 내놓았다. 시간을 한 번에 맞춰 놓으면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번 뒤집고 온도도 중간에 바꿔주고 뭔가 복잡하다. 나는 아무리 맛있다한들  귀찮아서 안 하고 말 걸. 으니 유니 자매는 꼭 그렇게 하고야 만다.


'맛'을 잘 느낀다는 건, 축복이 아닌가 싶다. 내 몸의 감각을 잘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고 냄새에 취하고 맛에 기쁨을 느끼고... 며칠 전 갑자기 으니가 "엄마, 난 자연친화적인 사람인가 봐. 자연이 너무 좋아. 그냥 자연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게 아닌가? 맞다. 으니는 완전 요즘 아이이고 예쁘고 귀여운 기성제품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한없이 자연과 닮은 아이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하늘에 감탄하고, 산책하며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에 심취해 사진을 찍어대고.


 다양한 것에 오감을  즐길 줄 아는 으니가 멋지다. 오래오래 디테일하게 감각적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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