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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6. 2024

사랑은 타이밍

타이밍은 바로 지금

K는 2주 전 아내를 잃었다. 공식적으로는 교통사고로. 하지만 K는 의심한다. 자살이라고. 사고가 나던 날 아침 아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오늘 사고가 날 거야. 건강을 위해 용돈벌이나 할 겸, 아내가 아침마다 나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한 6개월?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작년에 막내 아이가 대학을 가고 아내가 말했다. "나 복지카드 좀 주면 안 돼?"


아내는 바지런했다. K만큼이나. 넉넉지 않은 살림에 외벌이라 원래도 알뜰한 아내는 한 푼이라도 아껴가며 아이들을 잘 키워냈다. 그런 아내가 유일하게 남편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복지카드였다. 지인들이 복지카드로 한턱내거나 옷을 사 입거나 하는 경우가 잦았고 복지카드가 마치 남편의 사랑의 증표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19년 동안이나 포기하지 않고 달라하더니 작년,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복지카드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2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아내는 복지카드를 만져보지 못했다.


K는 아내에게 이런 말로 구슬렸다. "막내가 대학 가고 나면 우리 둘이 해외여행 갈 비용이라도. 매년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쓰다 보면 없어질 게 뻔하잖아. 그냥 이 카드 없는 치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애들 다 키우고 나면 쓰면 되잖아. 그땐 큰 돈이 되어 있을 거야" K의 복지카드에는 돈이 모여갔다.

돈에 있어서만 좀 인색했지 성격 좋은 K는 아내의 친구들하고도 자주 만났는데, 친구들이 "복지카드에 얼마나 모였는지 좀 보자. 우리 **가 울면서 노래를 하는데도 안주네. 독하다, 독해. 그러나 우리 **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작년 시월엔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혹시라도 나 죽으면 내 친구 영숙이 있잖아. 아직 결혼 안 한. 그 친구랑 잘해봐. 내가 말도 해 놨어" 농담이려니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허투루 한 말이 아니다. 나 몰래 보험까지 더 들어놨다. 커브를 돌다 차가 미끄러졌고 사인은 의심 없이 사고로 정리되었는데... 나만 안다. 아내는 작정을 하고 나갔다. 오늘 아침 웃으며.


K의 눈이 핏빛이다. 사람의 눈빛이 저리도 되는구나.

"선생님, 저 죽어도 모자란 놈입니다. 아내의 맘도 모르고. 그 복지카드가 뭐라고. 3000만 원이 있으면 뭐해요. 같이 쓸 사람도 없는데. 그냥 버려 버릴까 봐요. 이것 때문에 아내가... 내 마음을 몰랐을까요? 얼마나 **를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어요... 카드도 받지 못한 아내로, 사랑받지 못한 아내로 평생을 생각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이들 넷 다 잘 키워 좋은 대학 보내고, 이제 우리 둘이 맛있는 것 먹으며 여행 다니려 아꼈는데, 바보 같은 마누라. 내 맘도 모르고. 혼자 끙끙 알고 죽어버렸어요. 내가 나쁜 놈입니다. 오죽하면 지 친구하고 결혼해서 살라고. 나를 끝까지 생각해 주고. 그런 착한 사람이에요. 나쁜 맘으로 친구랑 잘해보라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날 위해 결혼하라고 한 게 그 사람이에요. 난 이제 어떡하죠? 마누라 죽여버린 미친놈이 살아서 무엇하나요..."


그러네... 복지카드. 나 역시 남편 것까지 내가 가지고 있다. 친구들 모두 남편의 복지카드를 갖고 있는데, 내 남편이 누군지 다 아는데 나만 복지카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사랑의 상실이라 느껴졌을 수 있다. 물론, 복지카드는 상징이다. 단순히 복지카드 하나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K의 말대로 자살이 아닌 우연한 사고일 수도 있다. 하지만 K는 확신한다. 아내의 죽음은 나 때문이라고.



K는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는 표현을 원한다. K는 사랑을 위해 미래에 투자했고 아내는 현재의 사랑을 원했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같지만 추구되는 방식이나 방향은 다른데, 내 생각만을 밀고 나가고 상대의 생각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사랑의 증거로 원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명품일 수도 있고, 함께 시간 보내기도 있고, 개인시간을 많이 주는 것 일 수도 있다. 현찰이 제일 좋은 사람도 있고, 스킨십이 최고인 사람도 있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것이 기쁨인 사람, 잔잔한 일상이 최상인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고 싶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바로!


지금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사랑한다면 지금 바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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