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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20. 2024

사춘기 딸과 홈베이킹(7)

근거 있는 의심이 생사람 잡네!

완벽하다! 재료가 별로 다양하지 않은 우리는 무조건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

그래서 녹차가루를 대~충 넣고 아몬드와 색깔초콜릿으로 토핑을.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으니 혼자서 후딱 만들었나 보다. 옆에서 왔다 갔다 하던 으니가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역시나 소파에 편히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네!


엄마 : 벌써 다 만든 거야?

으니 : 응.

엄마 : 아주 쉽게 만드네~

으니 : 진짜 쉬우니까.

엄마 : 그래도 처음엔 허둥대며 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잖아. 이번엔 빨리 됐는데.

으니 : 이 정도쯤이야 ㅎㅎ


첫 번째 휘낭시에는 반죽가루를 채 치지 않고 넣어버렸다. 또 틀을 너무 오래 냉장고에 넣어 놓아서 틀이 차가워졌는지, 예열이 덜 되었는지 아무튼 20분이 넘게 구웠는데도 색이 희미끄래하고 겉이 바삭하지 않았다. 이번에 와우~제대로 겉. 바. 속. 촉.!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자랑 좀 해야지. 영상통화로~


으니 : 할머니, 할아부지~ 빵 만들었어요.

할아버지/할머니 : 어이구, 잘도 만들었네. 아르바이트 값 많이 받아야겠네.

으니 : 안 줘요. 그래서 제가 다 먹을 거예요.

조금 있다 고모에게도 연락이 왔다. 빵 보여달라고.


휘낭시에 2

재료: 무염버터, 계란 흰자, 박력분, 설탕, 꿀, 소금, 아몬드 가루, 아몬드, 색깔초콜릿  

배가 나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와서 식사량을 조절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는 아빠는 요즘 바나나를 점심으로 먹는다. 그런데 내일은 이 휘낭시에를 가져가서 먹겠단다. 맛있긴 한가보다. 으니가 정성껏 두 개를 포장하니 한 개만 하란다.



으니 : 왜, 두 개는 먹어야지? 쬐꼬만 데.

아빠 : 아까와.


그렇다. 입에 들어가면 순간에 없어지는 휘낭시에다. 그래도 으니가 쉽게 만들 수 있느니 두서너 개쯤이야 가뿐히 먹어치우련만, 딸내미가 정성스레 만든 빵을 두 개나 쓱~먹는 것이 미안한가 보다. 착한 남편! 니는 자기가 다 먹을 거라 해놓고는 잘 만들어졌다며 여기저기 다 줘 버린다. ^^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쓰레기 분리수거의 밤이었다. 착한 남편을 위해 오늘은 나와 유니가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다. 분리수거만 하러 퇴근 후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건 억울한 일이기에 편의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을 가기 위해 분리수거를 나간가는 게 정확한  말이겠지만. ㅎㅎ

유니와 함께 종이/병/플라스틱 재활용품들을 처리한 후, 시원한 밤을 위해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고고~

4캔에 11,000원 하는 맥주를  들고 이동하려는 순간 왼쪽 냉장고에 좋아하는 맥주 4캔에 9,000원을 보고야 만다. 귀찮지만 기존 맥주를 도로 넣고 4캔 9,000원 맥주가 달랑 4개 남은 것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괜히 눈에 확 띈 쫄병과자도 집어 들고 운이 좋군~하며 계산대로 갔더니,

점원이 "맥주 13,000인 것 아시죠? 9,000원 아닙니다!" 정색을 하신다.

"네? 9,000원이라 쓰여 있던데... 요?"

"내일부터입니다!"  

급 우울해져서 맥주를 바꾸는 동안 뒤의 남자 손님이 먼저 계산을 치렀다.


집에 와서 산 물건을 정리하고 난 뒤, 뭔가 허전했다.

쫄병과자가 없었다!

분리수거백을 다시 확인해 봐도 없었다.

딸의 "떨어뜨렸나?"라는 말에

"백이 얼마나 큰데 떨어뜨렸겠어? 이상하네.." 하며 분리수거백만 툭툭 치며 살렸다.

영수증을 보니 맨 앞에 쫄병이 있었다.

쫄병은 사라졌지만 다른 물품들을 싸게 샀으니 쌤쌤이지 위로를 했지만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혹시 카운터에 남아있을 수도? 하는 순간 번쩍!

남자손님이 떠올랐다.

그분은 얼굴에서 술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술 충전을 위해 대용량의 맥주와 대용량의 과자를 구매했다.

맞아! 나의 물건들을 옆으로 제치고 맥주를 바꾸러 간 사이,

남자손님이 계산을 하면서 그 대용량 과자에 나의 자그마한 쫄병이 휩쓸려 들어간 거야.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분이 가져간 걸 수도 있고.


"맞지? **아! 그 우리 뒤에 있던 손님이 먼저 계산하면서 쓸려간 것 같아. 어쩜 알고도 시치미 뚝?"

"그럴싸한데, 엄마. 모르고 쓸려 들어갈 수 있지"

"어찌 됐든 너무 근거 있는 의심 아니니?"

드디어 풀었다. 미스터리를.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아서 학원서 돌아오는 으니와 함께 한번 더 편의점에 들러 확인했는데 떨어진 쫄병은 없었다. 내가 생각보다 집요하네! 쫄병은 남자 손님에게 가버린 게 확실했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실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던 으니가

"엄마! 없어졌다는 과자가 혹시 이 쫄병?"

어라! 아이스크림에 쓸려 쫄병은 빙하의 공간인 냉동실로 갔던 것이다. ㅎㅎㅎ

어찌하여 나의 실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사건의 원인을 돌렸을까?

한 번 남자손님의 실수(혹은 의도된 실수)라는 생각이 들자 확증편향마저 생겼다.

술을 마셔서 실수를 할 것이라는, 왠지 내 눈을 피하는 것 같은!  쪼그마한 쫄병과자가 손님의 대용량 과자에 휩쓸려 들어갔을 수도 있었을 테고, 흔들리던 장바구니에서 쫄병이 놀이터로 떨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죄 없는 남자손님을 도둑으로 몰아가다니! ㅜ.ㅜ 


냉동실에서 쫄병을 구출하지 않았다면, 나름 근거 있는 의심으로 그 남자손님에 대한 오해는 내게 진실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은 아닌데,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팩트인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일에만 착각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나 오해 역시 대부분 나의 착각에 불과할 때가 많은 듯하다. 확실하지 않을 때조차 사람은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니,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을 땐 잠시 판단을 멈추자. 미해결 된 사건이 오히려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으니까. 난 아직 멀었다. 무언가를 이해해서 끝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 판단에 있어 시간의 공백을 가져보자.^^ 


* 확증편향 :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증거만 보이고 또 그것만 모으려는 심리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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