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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Oct 01. 2024

피아노, 너를 추억하다.


나의 독백


21년간 살아온 우리 집을 수리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는 과감히 많은 짐들을 처분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까지 꽤나 고민을 했던 녀석이 하나 있다.

피아노.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피아노'라는 단어의 등장에 마음이 울컥한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녀석을 중고매장에서 데려왔다.

녀석은 집에 온 첫날부터 우리 가족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쳤던 나는 옛 감성에 젖어 녀석을 자주 찾았고,

레슨을 받아 제법 실력이 붙은 딸아이는 하교 후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피아노 연주였다.

당시 4살이던 둘째 아이는 장난감 놀이에 푹 빠져 있다가도 누나의 피아노 소리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가 자신이 연주하겠노라며 누나방해하곤 했었다. 가끔은 누나를 밀어내고 자리를 꿰차고선 아무도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손을 꼭 잡은 어린 남매가 엄마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신나는 피아노 소리에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녀석과 함께 행복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녀석을 찾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아이들이 독립을 한 이후로 녀석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사 기간 동안 우리는 잠시 다른 곳에 머물러야만 했는데 그전에 녀석의 거취에 대해 결정을 해야만 했다.

우리 모두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지금의 우리보다 이 녀석을 더 필요로 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덩그러니 홀로 빈방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마주했다. 닫혀있는 뚜껑을 어루만지니 후회가 밀려온다. 피아노가 사라지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마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스산했다.

녀석은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를 맡아주신 사장님 댁으로 간다. 아이들이 피아노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하니 새로운 곳에 가서도 큰 사랑받으며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져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녀석이 사다리차에 몸을 기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녀석이 먼저 떠나버리기라도 할까 봐 엘리베이터 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고개를 쭈욱 빼고 차에 실려 있는 녀석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아 본다.

애틋한 마음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운반업체 사장님께서 다가오시더니 90도로 인사를 하시며 말씀하셨다.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십니까? 20년 가까이 함께 하셨다고 들었는데 많이 서운하시겠어요. 저희가 **님 댁에 잘 보내드리겠습니다."


감동이다. 아무리 피아노만 전문으로 운반하시는 분이시라지만 이런 말씀을 하실 줄이야. 보내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시는 사장님의 따스함에 존경심이 올라왔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하나보다

잘 가렴, 그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해 준 모든 순간이 고맙고 행복했단다.

새로운 집에 가서도 꼭 행복해야 해!


집으로 올라와 녀석이 머물렀던 자리를 둘러본다. 텅 빈자리, 텅 빈 마음이다.

방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순간 아이들이 어릴 적 연주했던 Hisaishi Joe의 <Summer>가 내 귀에 맴돈다.


조금 전 떠나간 그 녀석이 벌써 보고 싶다.




피아노의 독백


반짝반짝 빛나던 리즈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빛나는 녀석들이 해마다 탄생하여 줄을 이었고 내가 그 빛남을 조금씩 잃어갈 무렵 나는 지금의 주인님을 만났다.

내가 주인님의 집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나를 에워싸고 반겨주던 가족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주인님은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연주하셨고 첫째는 언제나 둘째의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어릴 적부터 친구사이였던 첫째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실력이 늘더니 웬만한 악보는 모두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다.

여기저기 쑤셔대며 나를 힘으로 제압하려 했던 꼬마 녀석 둘째도 초등학교에 들어가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언젠가부터는 입장이 바뀌어 아이들의 반주에 맞춰 주인님이 노래를 하시곤 했는데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내 몸 또한 노쇠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를 찾는 횟수는 줄어만 갔다. 사춘기 때에도, 수험생이었을 때에도 언제나 함께였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이제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슬프고 외로웠지만 받아들여만 했다.

주인님은 가끔 나를 찾아와 깨끗이 닦아 주시다가 옛 생각에 잠겨 연주를 시작하지만 끝맺음은 없었다. 주인님의 손가락은 더디게만 움직일 뿐이었다.


새로운 집으로 옮겨지기 전 주말에 내 친구 첫째가 집으로 왔다.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방으로 들어와 나를 마주한다. 아무 말이 없지만 손 끝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마음속으로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헤어진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내게 인사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마음 아팠다. 나 역시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잊지 않을 거야.'


누군가가 나의 몸을 두꺼운 천으로 덮었다.

그리고 나는 차에 실렸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하나보다.

덮인 사이로 주인님의 모습이 보였다.

"주인님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나의 인사가 주인님 마음에 전달될 수 있도록 나는 목청껏 소리쳤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이 순간

Hisaishi Joe의 <Summer>가 내 귀에 맴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내 앞에 앉아 이 곡을 연주하던 꼬마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https://youtu.be/J7or0noYfMA?si=pAk-CEWhumserN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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